낭원군(朗原君) 이간(李偘)의 시조 작품은 『진본 청구영언』에 30수가 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산수강호의 삶, 태평성대의 취흥, 사신으로 가서 느낀 회포, 이룬 것 없이 늙어 가는 심정, 심성수양의 면려 등을 노래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중 〈조어대〉 3수는 효종이 지은 〈조어대〉를 보고 화답한 것(“右三首釣魚臺和孝廟御製”)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1) 태공(太公)의 조어대(釣魚臺)를 계유 구러 ᄎᆞ자가니/ 강산(江山)도 그지 업고 지개(志槩)도 새로왜라/ 진실(眞實)로 만고영풍(萬古英風)을 다시 본 듯하여라
(3-2) 난하수(灤河水) 도라 드니 사상부(師尙父)의 조기(釣磯)로다/ 위수(渭水) 풍연(風烟)이야 고금(古今)에 다를소냐/ 어즈버 옥황필사(玉璜畢事)를 친(親)히 본 듯ᄒᆞ여라
(3-3) 수양산(首陽山) ᄂᆞ린 물이 조어대(釣魚臺)로 가다 ᄒᆞ니/ 태공(太公)이 낙던 고기 나도 낙가 보련마ᄂᆞᆫ/ 그 고기 지금(至今)히 업스니 물동 말동 ᄒᆞ여라
첫째 수는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늙도록 자신의 능력을 알아볼 임금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강태공의 영웅적 면모에 대한 감탄을 노래하고 있다. 둘째 수는 강태공이 위수에서 부참(符讖)이 새겨진 구슬 옥황(玉璜)을 낚아 그 예언대로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일을 강가에서 상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하를 돌아들어 강태공의 낚시터를 찾았다고 했는데, 강태공이 낚시질했다는 황하 상류의 위수(渭水)는 만주 열하성의 경계에 있는 난하와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이 작품은 효종에게 바치려고 지은 시조인 만큼 자신이 효종의 북벌계획에 강태공 같은 도움은 못될지라도 무언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암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수는 수양산은 백이숙제의 절개를, 조어대는 강태공의 공훈을 상징하는 것인데, 자신은 절개를 숭상한다는 것인지 공훈을 본받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백이숙제는 은나라 정벌을 반대하다가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은 사람이고, 강태공은 은나라를 쳐서 공을 후세에 드리운 사람인데, 대립되는 두 인물을 부러워하면서 회고하고 있다. 강태공을 본받아 낚시를 하며 성군을 기다리지만 강태공이 낚던 고기가 없다는 말로 기약에 대한 불확실한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움은 무왕이 은나라를 칠 때 반대했던 백이숙제와 찬성했던 강태공을 끌어와서 자신의 심중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