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 형식의 가사를 서곡 1수와 본곡 9수 등 총 10수로 구성한 연장체 가사. 대부분 4음보격이지만 가끔 6음보의 변격도 보임.
1926년 후산(厚山) 이도복(李道復)이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이산정사(駬山精舍)를 낙성한 후, 주자(朱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와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를 전범으로 하여 마이산(馬耳山)을 둘러싼 구곡팔경의 승경을 노래한 강호가사이다.
〈이산구곡가〉는 “어화 우리 벗님네야 젊었을 제 귀경가세”라는 발어사로 시작하여 “이 경치(景致)를 못 다보면 평생 유한(平生遺恨) 되리로다”의 결어사로 끝맺고 있는데, 각 연의 내용은 이산의 천석(泉石) 구경을 권유한 서곡을 시작으로 1곡인 풍혈냉천(風穴冷泉), 2곡인 수선루(睡仙樓)와 구소(龜沼), 3곡인 광대봉(廣大峰)과 용연(龍淵), 4곡인 용암동천(龍岩洞天)과 와룡선생(臥龍先生), 5곡인 이산묘(駬山廟)와 마이정사, 6곡인 나옹 선사의 나옹암(懶翁菴), 7곡인 금당사(金塘寺), 8곡인 봉두굴(鳳頭窟), 9곡인 마이정(馬耳頂)의 승경을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이산구곡가〉는 주자의 〈무이구곡가〉와 이이의 〈고산구곡가〉와 마찬가지로 마이산의 승경을 배경으로 삼아 은자적 자세에서 자연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서사와 9곡을 제외하면 전범에서 벗어나 마이산 승경의 묘사 속에 망국의 한과 구국의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4곡에서 와룡선생 제갈량을 용사하여 진안 지방에서 창의한 의병장 이석용의 거병을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5곡과 9곡에서도 연재 송병선과 면암 최익현의 애국 사상,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다는 주필대의 유적, 조선 개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몽금척(夢金尺) 관련 속금산(束金山)[마이산의 이칭]의 승경 등을 노래하면서 우회적으로 우국충절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산구곡가〉는 1919년 3·1 운동의 좌절과 망국의 한을 달래기 위해 조선의 개국과 깊은 관련이 있는 마이산의 승경 속에 우리 민족의 기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창작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산구곡가〉는 진안 마이산 구곡의 승경을 노래하는 가운데 민족정기를 고취하기 위해 창작된 작품으로, 이산정사의 낙성과 더불어 널리 배포된 목적적인 가사이다. 따라서 〈이산구곡가〉는 민족정기를 환기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