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는 “청계유사(淸溪遺事) 권지이(卷之二)”라 적혀 있고, 목록과 본문 시작 부분에는 “청계망사공유사가사(淸溪妄士公遺事歌詞)”라 되어 있다. 28.5×19.5㎝(세로×가로) 크기에 총 31장으로 되어 있는 필사본이다. 1면은 12행으로 되어 있고, 1행에는 20자씩 규칙적으로 적혀 있다. 간혹 글자를 적지 않고 비워 둔 부분이 있다. 책의 끝에 현손(玄孫) 강황(姜璜)이 써서 붙인 〈가사후(歌詞後)〉를 통해, 원본을 필사한 지 오래되어 상태가 좋지 못하여 이를 다시 옮겨 적은 전사본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시조 86수와 가사 2편이 실려 있다. 가사는 2편 모두 강복중의 작품이며, 시조는 86수 중 65수가 강복중의 작품이다. 나머지 21수 중 5수는 이미(李瀰)의 작품이고, 16수는 정철(鄭澈, 1536∼1593)의 〈훈민가(訓民歌)〉이다. 후반에는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찰 16폭과 한시 6수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시조 65수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수월정청흥가(水月亭淸興歌)〉 21수다. 이 작품은 강복중이 죽기 1년 전인 1638년(인조 16)에 지은 것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의탁한 갈마산 수월정 주변의 자연과 그 속에서 느끼는 삶에 대한 감회를 읊은 것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시조들은 특정 인물과의 인연을 강조하거나 자신과 가문의 처지를 한탄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가사 2편 중 〈위군위친통곡가(爲君爲親痛哭歌)〉는 임진·병자 양란 후의 피폐해진 사회상과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연군(戀君)·우국(憂國)의 정을 표현한 것이고, 〈분산회복사은가(墳山恢復謝恩歌)〉는 산송(山訟)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과 충청감사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의 도움으로 선산을 회복한 것을 노래한 작품이다.
17세기 초반 충청도 은진(지금의 논산)에 거주하던 사족인 강복중의 시조와 가사를 수록한 이 책은 16세기 재지사족의 시가와 구별되는 성격의 작품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