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구육명은 고려 전기의 학자 최행귀가 말한 향가 또는 당시 한국시가 구성의 특징이다. 967년에 균여(均如, 923∼973)가 지은 10구체 향가를 최행귀가 한시로 번역하였다. 한시로 번역한 서문에서 최행귀는 향가 또는 한국시가 구성의 특징을 3구 6명이라 말하였다. 1940년대 후반부터 연구자들은 이 말이 10구체 향가의 구성을 말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향가의 ‘3구 6명’ 구성은 시조(時調)의 ‘3장 6구’ 구성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삼구육명’에 대한 논의는 아직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논란이 많다.
‘삼구육명(三句六名)’은 967년(광종 18)에 한림학사 최행귀가 귀법사(歸法寺) 주지였던 균여(均如, 923∼973)가 지은 10구체 향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보현십종원왕가(普賢十種願王歌)」) 11수(①「예경제불가(禮敬諸佛歌)」∼⑪「총결무진가(摠結無盡歌)」)를 한시(7언율시: ①「예경제불송(禮敬諸佛頌)」∼⑪「총결무진송(摠結無盡頌)」)로 번역하고 그 서문(「역가서(譯歌序)」)에서 한국의 노래[歌]를 중국의 시(詩)와 비교하면서 향가 또는 당시 한국시가 구성의 특징으로서 든 말이다. 그 의미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균여전(均如傳)』 제8 「역가현덕분(譯歌現德分)」에 실려 있는 최행귀의 「역가서」는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의 글로서, ‘(1) 중국과 한국에서의 불교시가의 발달, (2) 중국 시와 한국 노래의 구성 등에서의 차이, (3) 보현보살의 십대원(十大願)에 관한 중국의 징관(澄觀) 저 『행원(行願)』의 마지막 편(篇)에 있는 사구게(四句偈) 및 십종문(十種文)과 한국의 균여 작 「보현십원가」 및 그 서(序)의 의의, (4) 「보현십원가」를 한시로 번역할 필요성’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었고, 대체로 엄격한 대구(對句)로 이루어졌다. 그 (2) 부분에서 “시는 중국말로 얽어서 ‘5언7자’로 갈고 쪼았고, 노래는 우리말로 배열하여 ‘삼구육명’으로 끊고 갈았다(詩搆唐辭 磨琢於五言七字 歌排鄕語 切磋於三句六名).”라고 하였다.
그 ‘5언7자(五言七字)’는 중국말로 된 시(한시)를 구성하는 주요 자수(字數)들인 ‘5언(자)’과 ‘7언(자)’으로 판단되지만, ‘삼구육명’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서는 1929년의 일본인 쓰치다 교손[土田杏村]의 시론(試論: ‘삼구’를 10구체 향가의 ‘세 개의 歌聯’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하였고, ‘육명’에 대해서는 뚜렷한 견해를 보이지 않았음) 이후 근년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1940년대 후반부터 다수의 연구자들은 이 말이 10구체 향가의 구성을 말한 것으로 보아 왔다. 그 가운데서 ‘3구 6명’은 ‘3장(章) 6구(句)’로서, ‘10구체 향가가 3장으로 구성되고 각 장은 2구씩으로 구성됨’을 뜻한다는 견해(池憲英 등)가 시조(時調)의 ‘3장 6구’ 구성과 관련되며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 ‘구’와 ‘명’을 불교식 용어로 본 견해들(梁熙喆 등)도 구성 양상 파악의 결과는 ‘3장 6구설’과 비슷하다. 그 밖에, ‘명’을 ‘자(字)’로 보아서 ‘3구 6자’는 10구체 향가가 3장으로 구분되고 각 장은 다시 4 내지 2개의 항(項)으로 나뉘며 각 항은 6자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견해(洪起文 등)와 10구체 향가에서 제1 · 3 · 7구의 세 구가 6자로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고 한 견해(金完鎭) 등도 있었다.
이와 달리, 「역가서」의 (2) 부분에서의 ‘노래’가 10구체 향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당시의 한국시가 전반을 가리킨 것으로 파악하여 ‘삼구육명’을 살핀 견해들이 1980년대부터 나타났다. 그 주요한 것으로 ‘3구 6명’이 당시 한국시가의 대표적인 두 유형(양식)의 구성을 말한 것이라고 보아서, ‘3구’는 10구체 향가(三句型 시가)의 ‘3단 구성’을 말한 것이고 ‘6명’은 ‘6자’로서 민요 등의 4구체 향가(六名型 시가)의 각 시행들이 6자(음절) 위주로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라는 견해(成昊慶)가 있다. 그리고 ‘3구’는 모든 향가가 3구(세 토막)로 구성된다는 보편적인 원칙이며 ‘6명’은 모든 향가의 가능한 구체적인 존재양식으로서 띄어쓰기의 여섯 가지 양상(3, 4, 6, 8, 9, 10분절)을 말한다는 견해(梁太淳) 등도 나타났다.
몇몇 이견들도 있지만, ‘3구’는 10구체 향가 작품들이 대체로 ‘제1∼4구, 제5∼8구, 제9∼10구’의 세 부분으로 구성됨을 말한 바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6명’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의 뜻을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견해들로 나타날 수 있다. 그 정확한 의미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명’의 뜻이 사전적 의미(‘이름, 글자’ 등)를 크게 벗어나거나 엉뚱한 것이 되지 않으면서 그 ‘6’ 단위가 당시 한국시가의 실상과 부합하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삼구육명’이 「역가서」의 전체 문맥 속에서 어떠한 것(대상의 범위와 성격)에 대한 설명인가, 중국어와 한국어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5언7자’와 정확히 대구를 이루어서 ‘구’와 ‘명’이 동일한 단위를 뜻한 것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말은 시가 구성의 일반적인 원리로서 적합하며 시가 형식의 핵심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삼구육명’은 한국시가 구성의 특징에 대한 가장 오래된 언급이며 향가 작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 말한 것이라는 점에서 작지 않은 의의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최행귀의 그 언급은 향가 또는 당시 한국시가 구성의 한 특징을 말한 것일 뿐이라는 한계성을 지니며, 또 그 설명이 그 시가 구성의 핵심을 정확하게 밝힌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의미 파악에서 논란이 많은 ‘삼구육명’의 의의를 지나치게 중시하여, 이를 향가 형식의 기본원리 내지는 한국시가의 전반적 · 보편적인 구성 원리로 보고자 하는 등의 논의는 조심하거나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