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은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중심 도성이자 낙동강 하구와 남해안을 잇는 교역 창구로 사용된 거점성이다. 봉황동유적, 회현리유적으로도 불린다. 성곽은 삼국시대 금관가야가 처음 축조한 것으로 전한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의 유물들이 다수 출토된다. 이외에도 통일신라시대 토기와 기와를 비롯하여 고려~조선시대에 걸치는 자기편 등도 확인되고 있어 폭 넓은 시기에 걸쳐 사용된 유적임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 63번길 50로 분산성의 남쪽 끝자락과 임호산으로 둘러싸인 고김해만의 한가운데 저지대에 위치한다. 성곽은 남해안으로 뻗은 능선의 끝자락이자 해반천변에 위치한 독립구릉을 감쌌으며, 동서 길이 약 130m, 남북 너비 약 30m의 낮은 언덕 위에 이루어져 있다. 전체 성곽 길이와 면적은 불명확하다.
성벽은 구릉 외곽으로 크게 타원형으로 돌려져 있다. 그 가운데 2003년 소방도로확장공사에 앞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금관가야의 것으로 추정하는 성벽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조사된 성벽은 양쪽 아래에서 위로 너비를 줄여가며 다듬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려 기초를 만들고, 그 가운데에 흙을 부어가며 켜켜로 다져 수평쌓기로 하였다. 성벽의 너비는 아랫부분이 14m, 윗부분이 7m 정도였고, 가운데에 높이 2.4m 정도로 남아 있다. 다만, 발굴조사 당시 기저부에서 5세기 후반대의 토기편이 출토되어 성벽의 축조시기를 금관가야 멸망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성 안에서 확인되는 시설로는 생활유적인 주거지를 비롯하여 환호, 선착장 등 과거 가야 중심지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는 복합적 시설들이 있다. 내부의 주거시설은 구릉 동북쪽의 비교적 완만한 사면에 집중 축조되었다. 그리고 서쪽 구릉 외곽에서도 고상창고와 관련된 시설들이 확인되었다. 방어시설로 볼 수 있는 환호는 구릉 중턱 해발 17~25m 지점에서 확인된다. 구릉 하단부의 것은 일부 단절된 곳이 존재하나 유사한 구시설이 동쪽 완경사지역에서도 확인되는 것에서 구릉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