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95년과 1906년 말 충청남도 홍성 일대의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항일 투쟁.
경과
1906년 안병찬(安炳瓚) · 채광묵 등은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 소식을 듣고 의병을 재기하였다. 이들은 정산에 거주하고 있는 전 참판 민종식(閔宗植: 1861~1917)을 총수로 추대하고 1906년 3월 15일(음력 2월 21일) 예산의 광시에서 봉기하여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홍주성에서 일본군이 패퇴하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군 보병 제60연대 대대장 다나카(田中) 소좌 지휘하의 보병과 기병대를 파견하여 의병 참모장 채광묵 부자 등 300여명을 학살하였다. 의병장 민종식은 간신히 예산 대술에 있는 이남규(李南珪)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민종식 등은 그 해 10월 재기를 도모하였으나 일진회원의 밀고로 이용규(李容珪) 등 주도자들이 체포되었다. 민종식은 미리 피신해 체포를 면했으나 11월 20일 공주 탑산리에서 체포되어 교수형을 선고 받았다.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1906년 홍주의병의 홍주성 전투」(김상기, 한국근현대사학회 편,『한국근현대사연구』 37, 한울, 2006)
- 「1895-1896년 홍주의병의 사상적 연원과 전개」(김상기, 『윤병석교수화갑기념논총』, 지식산업사, 1990)
- 「홍주성의진(1906)의 조직과 활동」(유한철,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