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광묵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대한제국기 을사조약 체결 후 박안기, 이만식 등과 의병을 규합한 의병장.
이칭
  • 구연(龜淵)
  • 명숙(明淑)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평강(平康)
  • 사망 연도1906년(고종 4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50년(철종 1)
  • 출생지충청남도 청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을사조약 체결 후 박안기, 이만식 등과 의병을 규합한 의병장.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명숙(明淑), 호는 구연(龜淵). 충청남도 청양 출신.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박창로(朴昌魯)·안병찬(安炳瓚) 등과 홍주성(洪州城)에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약속하였으나 목사 이승우(李勝宇)의 배반으로 실패하였다.

의병거사에 실패한 뒤 곧바로 상경하여 10여 차례에 걸쳐 토적상소(討賊上疏)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채광묵의 기백에 감동하여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제수하였으나, 이를 고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다시 박안기(朴安曁)·이만식(李晩植)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1906년 4월 민종식(閔宗植)과 의병대를 조직하여 수천 명으로 규합된 대의병진의 참모장으로 추대되어 홍주성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반격하는 일본군과 최후까지 접전하다가 아들 채규대(蔡奎大)와 함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유공자공훈록』1(국가보훈처, 1986)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