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음신은 윤회를 인정하는 생사관에서 죽은 순간부터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까지의 중간 시기를 의미한다. 중유, 중온이라고도 한다. 중음신은 뜻으로 생기고 뜻으로 이루어진 의생신(意生身) 또는 의성신(意成身)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의 존재인 중음신의 신체는 미세한 물질로 보통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중음신의 기간은 불교 부파마다 다르게 설명하지만 7·7일 즉 49일을 만중음(滿中陰)이라 하여 최대 기간으로 본다.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불교식 제사 의례인 사십구재는 중음신에서 비롯한다.
범어와 팔리어 모두 ‘antarā-bhava’이다. 중유(中有) 또는 중온(中蘊)이라 하는데 한국에서는 흔히 중음신(中陰身)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의 존재로 잠정적인 신체를 의미한다.
불교의 생사관에 따르면 새로운 존재의 탄생은 반드시 세 가지 성립을 필요로 한다. 즉 부모의 성행위와 여성의 가임기, 그리고 일종의 업식(業識)의 존재로 중음신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유는 사유(四有) 가운데 하나로 사유는 생유(生有) · 본유(本有) · 사유(死有) · 중유(中有)를 말하며, 여기서 유(有)는 바로 ‘존재’를 의미한다.
생유(生有)는 태어남의 순간을, 본유(本有)는 태어남의 시간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사유(死有)는 죽음의 순간을, 그리고 중유(中有)는 사유부터 생유까지의 존재 기간을 말한다. 중유는 부모의 정혈(精血)이 아닌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하여 의성(意成)이라고도 하며, 항상 즐거움을 구하기 때문에 구생(求生)이라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향을 먹고 산다고 하여 식향신(食香身)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중음신의 기원은 불교 이전의 인도 신화와 관련이 있는데 건달바(健達婆, gandharva)가 그것이다. 건달바는 음악의 신으로 알려졌는데 향기를 먹는 신이며 향을 찾아가는 신이라 하여 심향(尋香)이나 심향행(尋香行)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또한 중음신은 뜻으로 생기고 뜻으로 이루어진 의생신(意生身) 또는 의성신(意成身)이라고도 한다. 중음신의 신체는 미세한 물질로 보통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중유 또는 중음신의 기간은 불교 부파마다 다르게 설명하지만 7 · 7일 즉 49일을 만중음(滿中陰)이라 하여 최대 기간으로 본다.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십구재(四十九齋)[칠칠재(7 · 7재, 七七齋)]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 의례로서 중음신에서 비롯한다.
불교 부파 가운데는 중음신을 인정하지 않는 부파도 있었는데 이들 부파의 주장에 따르면 중생은 죽으면 바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설일체유부의 주장 가운데는 중생이 죽어 다음 생을 받기까지 최대 49일 동안 중음신의 상태로 머문다고 한다. 이러한 생사관은 동아시아 불교는 물론 티벳불교에 수용되었다. 중생은 죽으면 업력에 따라 다음 생명으로 옮겨간다. 이 때 동력은 성적 욕망으로 설명하며, 중유에서 다음 존재로 생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즉 중음신은 자신의 업력에 따라 공간적으로 먼 곳도 곧바로 연결된다고 한다.
자신의 부모가 될 인연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 또는 암컷과 수컷이 만나서 교합하는 것을 보면 마치 중음신 자신이 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켜 교합하려는 성적 욕망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때 남자로 태어날 중음신이라면 여성이 욕망의 대상이 되고 남성은 미움을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여자로 태어날 중음신은 반대로 남성을 성적욕망의 대상으로 그리고 여성에 미움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 두 남녀, 또는 암컷과 수컷은 각각 정혈(精血)을 낼 때 중음신이 모태에 정착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에 중음신은 소멸되고 새로운 결생(結生)으로 생유(生有)가 시작된다.
최대 49일을 말하는 중음신은 본래 설일체유부의 교설이다. 그리고 대승불교에 수용되어 대승권인 우리나라 불교의 모든 종파는 중음신에 바탕한 칠칠재(七七齋) 또는 사십구재를 종교의례로 행하고 있다. 천도(薦度)의식은 바로 죽은 사람이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7일마다 불교 경전을 독송하고 공양을 올린다. 우리나라에 중음신과 관련한 천도의식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라나 고려 때 이미 천도의식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조선에서부터는 사십구재 형식으로 천도재가 행해졌음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때문에 현재 이러한 천도의식은 불교를 넘어 민간이나 무교(巫敎)에서조차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사후 의례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