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학성동 철조 약사여래 좌상은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철조약사여래좌상이다. 앉은 상의 전체 높이는 110cm로 등신대에 가깝다. 얼굴과 상·하체의 비율은 적절하고 안정감이 있으나 목이 길고 가늘게 조성되어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인상을 준다. 이 불상은 일제강점기까지 원주시의 학성동 노천에 다른 4구의 철불과 함께 방치되어 있던 것을 수습한 것이다. 함께 발견된 다른 철불들은 공통된 양식을 갖고 있으나 이 철불만은 예외적이다. 이 철불은 독창적이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넘치는 기법을 구사해 한국 조각사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이 불상은 일제강점기까지 원주시의 학성동 들판 노천에 다른 4구의 철불과 함께 방치되어 있던 것을 수습한 것이다. 앉은 상의 전체 높이는 110cm로 등신대(等身大)에 가깝다. 얼굴과 상·하체의 비율은 적절하고 안정감이 있으나 삼도가 표현된 목이 길고 가늘게 조성되어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인상을 준다. 얼굴은 타원형이고 나발이 표현되어 있다. 이목구비도 특이하다. 우선 미간은 약간 넓고 눈은 옆으로 길게 표현되어 관자놀이 인근까지 이어져 있으며, 코는 콧방울 윗부분에서는 가늘게 시작하지만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어지면서 콧방울이 펑퍼짐하게 퍼지는 모습이다. 때문에 눈썹이 이루는 곡선과 코의 윤곽이 이루는 곡선이 자연스럽게 하나처럼 이어져 있다. 턱은 바짝 당기고 입은 꼭 다문 모습인데, 오로지 눈만으로 미소를 표현한 듯한 인상이다. 어깨가 넓은 듯하지만, 실은 목이 가늘어서 넓게 보이는 것이며, 어깨의 윤곽은 처지듯이 흘러내린다. 양어깨는 통견의 가사로 덮여있고, 가슴은 넓게 노출되어 있는데 가운데 부분이 아주 미세하게 움푹하게 들어가 있을 뿐 양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가사의 옷깃은 곡선을 이룬 ‘V’ 자 형태로 벌어져 있고, 옷깃 테두리는 얇은 띠 자락으로 마감되었다. 왼쪽 어깨에는 대의 자락을 묶는 매듭이 얕은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신체 전체를 감싸는 옷 주름은 이 철불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마치 물결이 퍼지는 것처럼 규칙적이면서 얕은 양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주름 자체가 날카롭게 표현되어 깊지 않는 양각임에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표현기법은 신체와 그 위를 덮은 가사를 유기적으로 엮어주는 역할을 하며, 특히 오른쪽 상박 부분의 ‘S’자 형태로 흐르는 옷자락의 처리는 그 아래의 팔의 존재를 은은히 부각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독특하다. 이러한 기하학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독창적인 옷 주름 처리는 1971년 보물로 지정된 아산 송악면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과 유사하다. 가부좌한 무릎은 높은 편이며 발바닥은 오른발만 표현하였는데, 상체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이 발바닥을 덮으면서 아래로 ‘Ω’형으로 크게 굴곡지며 흘러내리기 때문에 발꿈치만 보인다. 아울러 오른발 종아리 부분의 옷자락 처리는 발목 부분에서 별도의 옷자락이 밖으로 기어나와 있다. 이는 하의와 대의 자락을 구분하기 위해 표현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역시 특이한 표현이다. 교차한 두 발목 사이로 부채꼴 모양의 옷자락이 펼쳐지는 것은 이 시기 철불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매우 작게 표현되어 차이를 보인다.
원주의 학성동 노천에서 이 철불과 함께 발견된 철불들은 공통된 양식을 갖고 있어 흔히 ‘원주철불양식’이라 칭한다. 그러나 이 철불만은 예외적인데, 주변의 ‘충주철불양식’이나 ‘광주철불’ 양식과도 전혀 다르며 통일신라시대를 계승한 고전적 양식의 철불들과도 양식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학성동 철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연관될만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원주 우산동에서 수습한 철조아미타불좌상이나 경기도 포천에서 출토된 철불좌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독창적이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넘치는 기법을 구사한 이 철불은 한국 조각사에서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