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이종회는 일제강점기 목재업을 통해 성공한 기업인이다. 성공의 배경에는 조선총독부의 수력 발전 사업과 그 담당 주체였던 일본 재벌 일본질소〔日窒〕가 있었다.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목재를 공급하는 데 수완을 발휘하여 급성장하였다. 30대 중반인 1940년경에는 조선을 대표하는 청년 실업가였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핵심 군수공업인 조선업에 뛰어들어 친일 기업가의 모습으로 보다 큰 성공을 위해 노력했지만, 패전으로 목적을 이룰 수는 없었다. 해방 후에도 기업 활동을 이어 나가지만 일제강점기 때 만큼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정의
일제강점기, 목재업, 조선업 등의 사업을 통해 성공한 기업인.
기업인으로 성장 계기
태평양 전쟁기 조선업 진출
조선인이기에 전쟁 수행을 위한 핵심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일제에 보다 노골적인 충성심을 보여야 했다. 이에 이종희는 도요무라 유타카〔豊村裕〕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면서 친일 기업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申報)』에 '경제인의 결전태세-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 함양', '나의 증산(增産)의 변(辯) -직장에서 옥쇄정신(玉碎精神) 발휘' 등의 기사를 도요무라 유타카의 이름으로 직접 기고하였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그는 당시에도 '시국형 실업인'으로 불렸다. 이렇게 일제 군수 · 국책에 협조하여 조선업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보다 큰 기업가로의 성장을 노렸지만, 성공할 수는 없었다. 곧 패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인수한 대인조선은 본격적인 대량 선박 건조에 들어가지 못하고 설비 확장의 과정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 기업 활동
참고문헌
단행본
- 배석만, 『한국조선산업사: 일제시기편』 (선인, 2014)
논문
- 배석만, 「일제 말 조선인자본가의 경영활동 분석: 白樂承과 李鍾會의 군수회사 경영을 중심으로」 (『경제사학』 45, 2008)
인터넷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친일파 관련 문헌(https://db.history.go.kr)
- 『동아일보』 (1947.4.26., 1947.5.4., 1948.1.21.)
- 『매일신보』 (1941.10.11., 1942.1.11., 1944.1.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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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이종회는 1941년 노구치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 건설을 주도하였다. 이에 대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반도의 은인에 감사」라는 제목으로 그 상황을 자세하고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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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매일신보』 1942.1.11., 19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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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동아일보』1947.4.26., 5.4., 194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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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제이 차 세계 대전의 일부로서,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되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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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배를 만들거나 고치는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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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건물이나 배 따위를 설계하여 만듦.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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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나라의 정책이나 시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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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군사상 필요한 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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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1910년 8월에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로 창간한 일간 신문. 국권 강탈 후 ≪대한매일신보≫를 강제 매수 하여 발행한 것으로, 국한문판과 한글판으로 간행하였으며 1945년에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고쳤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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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힘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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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밀을 밀가루로 만드는 가공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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