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황해도 안악군(安岳郡)에서 태어났다. 성장 과정과 중국으로 망명한 시기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1924년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인성학교(仁成學校)에서 교육을 받으며 항일의식을 키웠다. 인성학교는 특히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을 중요시하였다.
1932년 3월 상하이한인여자청년동맹[上海韓人女子靑年同盟] 임원 개편 때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김윤경을 비롯하여 김순애(金順愛), 박영봉(朴英峰), 이운선(李雲仙), 연충효(延忠孝) 등이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상하이한인여자청년동맹은 1930년 8월 16일 조봉원(趙奉元), 이의순(李義舜) 등 여성들에 의해 조직된 단체로, 한국독립당 산하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이 단체는 임시정부에 정보를 전달하거나, 상하이의 여성 교민에 대한 조사 및 교민 단합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32년과 1933년 3·1운동 기념일에는 격문을 발표하고 선전문 등을 배포하기도 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김윤경은 난징[南京]과 충칭[重慶] 등지로 옮겨가 독립운동을 펼치다 1945년 10월 10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