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순은 일제강점기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부회장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혈성단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김마리아를 중심으로 개편될 때까지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지부장으로 활동한 남편 송세호와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98년 5월 11일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읍 연흥리(蓮興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숙자(崔淑子)이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제2회로 졸업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중순경 김원경(金元慶), 김희열(金熙烈), 김희옥(金熙玉) 등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출신 기독교인 여성 60여 명과 함께 비밀결사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고, 1919년 5월에는 김원경을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 대표로 상하이[上海]에 파견하였다.
1919년 6월, 서울에서 결성된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총무 이병철(李秉澈)의 주선으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를 결성하였다. 혈성단애국부인회는 1919년 4월 초순 정신여학교 교사 장선희(張善禧), 황해도 재령군 신명여학교 교사 오현주(吳玄洲), 군산 메리블렌여학교 교사 오현관(吳玄觀),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이정숙(李貞淑), 이성완(李誠完) 등이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총재에는 오현관, 부총재에는 김희열, 회장에는 오현주 등이 선임되었다. 최갑순은 이때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독립운동 후원금을 모금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회장인 오현주의 활동 부진으로 침체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1919년 10월에 3·1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김마리아(金瑪利亞)와 황에스더를 주축으로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오현주의 배신으로 조직이 발각되었다.
1928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지부장으로 활동한 남편 송세호(宋世浩)와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였고, 1990년 11월 22일 홍콩에서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