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3월 9일 함경남도 북청군 양가면(良家面) 초리동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이정숙(李正淑)이다.
1919년 1월부터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졸업 예정자로서 세브란스병원 간호양성소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았으며, 그해 4월 세브란스병원 간호사가 되었다.
1919년 4월 초순 정신여학교 교사 장선희(張善禧), 황해도 재령군 신명여학교 교사 오현주(吳玄洲), 군산 메리블렌여학교 교사 오현관(吳玄觀)과 함께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를 결성하였다. 정신여학교 동창생을 주축으로 만든 이 단체는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한 후원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혈성단애국부인회는 같은 해 6월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총무 이병철(李秉澈)의 주선으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로 개편되었다.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는 1919년 4월 중순경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출신의 기독교인인 최숙자(崔淑子), 김원경(金元慶), 김희열(金熙烈) 등의 주도하에 60여 명의 회원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이 단체 역시 독립운동 후원금 모금을 위해 결성되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총재에는 오현관, 부총재에는 김희열, 회장에는 오현주, 부회장에는 최숙자 등이 선임되었다. 이정숙은 이때 평의원 겸 경성지부장을 맡았고, 세브란스병원 안에 간사부를 설치하여 김은도(金恩道)를 비롯한 10여 명을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같은 해 7월경 고향인 북청으로 여름휴가를 가던 길에 이원군의 보신여학교(普信女學校) 교사 신애균(辛愛均)을 찾아가 후원금을 받기도 하였다.
1919년 10월 19일에 3·1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김마리아(金瑪利亞)와 황에스더를 위로 · 축하하는 다과회 모임에 오현주, 장선희, 김영순(金英順), 이혜경(李惠卿), 백신영(白信永), 이성완(李誠完)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재건을 위한 조직 및 임원 개편이 이루어졌다. 회장에 김마리아, 부회장에 이혜경, 총무 겸 편집원에 황에스더, 결사부장에 이성완 · 백신영 등이 선출되었다. 이정숙은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윤진수(尹進遂)와 함께 적십자부 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지방에 지부를 두고 회원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낼 후원금을 걷었다.
1919년 11월 오현주의 배신으로 조직이 발각되면서 같은 해 11월 경찰에 붙잡혀 대구로 압송되었다.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2년 5월 6일 가출옥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