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2월 22일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삼촌 집이 자리한 황해도 장연군 송천리에 살면서 김마리아(金瑪利亞) 자매와 함께 소래학교를 다녔다. 이후 서울의 주1에 입학하여 1907년 제1회로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에서 동경여자학원(東京女子學院)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귀국 후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함흥의 영생학교(永生學校), 성진의 보신여학교(普信女學校), 원산의 성경학원(聖經學院)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원산의 진성여학교(進誠女學校) 교사로 있던 1919년 10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1919년 4월 조직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가 같은 해 6월에 통합하여 출범한 단체이다. 그러나 회장인 오현주(吳玄洲)의 활동 부진으로 곧 침체에 빠졌고, 1919년 10월 19일에 조직과 임원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때 회장은 김마리아가 맡았고, 이혜경은 부회장 및 원산지부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며칠 동안 김마리아, 황에스더와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활동 목적, 취지서, 임원의 임무, 본부 및 지부 규칙 등을 작성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지방에 지부를 두고 회원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낼 후원금을 걷었다.
1928년 2월 25일 근우회(槿友會) 대구지회 창립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그해 7월 14일에 열린 근우회 제1회 전국대회에서 집행위원회 후보위원 7인 중 한 사람으로 선임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