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근우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1919년 4월 조직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가 같은 해 6월에 통합하여 출범한 단체이다. 그러나 회장인 오현주(吳玄洲)의 활동 부진으로 곧 침체에 빠졌고, 1919년 10월 19일에 조직과 임원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때 회장은 김마리아가 맡았고, 이혜경은 부회장 및 원산지부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며칠 동안 김마리아, 황에스더와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활동 목적, 취지서, 임원의 임무, 본부 및 지부 규칙 등을 작성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지방에 지부를 두고 회원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낼 후원금을 걷었다.
1928년 2월 25일 근우회(槿友會) 대구지회 창립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그해 7월 14일에 열린 근우회 제1회 전국대회에서 집행위원회 후보위원 7인 중 한 사람으로 선임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근우회대회 철야 3일간」(『동아일보』, 1928. 7. 17.)
- 「근우대구지회 성황으로 설치」(『동아일보』, 1928. 2. 27.)
- 「출옥의 날」(『동아일보』, 1921. 9. 24.)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20. 12. 27.)
- 「판결문」(대구지방법원 1920. 6. 29.)
단행본
- 박용옥, 『김마리아: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홍성사, 2005)
- 『독립운동사자료집 9: 임시정부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논문
- 황민호, 「김마리아의 국내에서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애국부인회」(『한국민족운동사연구』 9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9)
주석
-
주1
: 1909년 정신여학교로 개명.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