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가토_기요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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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 쌓은 왜성이다. 이곳은 회야강과 포구를 접하고 있어 물자와 인력의 수송이 용이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중 왜군의 중요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평산성(平山城)으로 1594년(선조 27)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가토 기요마사와 강화 회담을 한 곳으로, 일본군이 물러간 뒤에 경상 좌수영 소속 서생포왜성으로 사용되었다.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왜성으로 16세기 말기의 일본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서생포왜성 (西生浦倭城)
서생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 쌓은 왜성이다. 이곳은 회야강과 포구를 접하고 있어 물자와 인력의 수송이 용이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중 왜군의 중요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평산성(平山城)으로 1594년(선조 27)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가토 기요마사와 강화 회담을 한 곳으로, 일본군이 물러간 뒤에 경상 좌수영 소속 서생포왜성으로 사용되었다.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왜성으로 16세기 말기의 일본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유정은 조선시대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이자 사명파의 조사로서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이끈 승장이다. 승과 합격 후 휴정의 법을 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에서 의승군을 일으킨 후 도총섭으로서 전투, 산성 수축, 군량 조달 등을 지휘했다. 전후에 왕명으로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화친 방안을 논의했다. 선과 교에 모두 정통했으며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을 남긴 조선시대 불교의 대표적 고승이다.
유정 (惟政)
유정은 조선시대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이자 사명파의 조사로서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이끈 승장이다. 승과 합격 후 휴정의 법을 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에서 의승군을 일으킨 후 도총섭으로서 전투, 산성 수축, 군량 조달 등을 지휘했다. 전후에 왕명으로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화친 방안을 논의했다. 선과 교에 모두 정통했으며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을 남긴 조선시대 불교의 대표적 고승이다.
울산왜성(蔚山倭城)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시 중구 학성동에 쌓은 왜성이다. 1597년(선조 30)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설계하고, 아사노 유키나가[淺野幸長]가 16,000명을 동원하여 40여 일만에 쌓은 왜성이다. 서쪽으로 언양 방면의 방어를 위한 태화루 부근, 북쪽으로 경주 방면의 방어를 위한 학성산의 성황당, 동쪽으로 동천(東川)과 이어진 반구정(伴鷗亭)의 구릉지 등에 지성(支城)이 있었다. 1597년 12월과 1598년 9월 사이 이곳에서 왜군과 조 · 명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울산왜성 (蔚山倭城)
울산왜성(蔚山倭城)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시 중구 학성동에 쌓은 왜성이다. 1597년(선조 30)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설계하고, 아사노 유키나가[淺野幸長]가 16,000명을 동원하여 40여 일만에 쌓은 왜성이다. 서쪽으로 언양 방면의 방어를 위한 태화루 부근, 북쪽으로 경주 방면의 방어를 위한 학성산의 성황당, 동쪽으로 동천(東川)과 이어진 반구정(伴鷗亭)의 구릉지 등에 지성(支城)이 있었다. 1597년 12월과 1598년 9월 사이 이곳에서 왜군과 조 · 명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북관대첩은 임진왜란 중인 1592년 9월부터 1593년 2월까지 함경도 북평사 정문부가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가 점령한 함경도 북부지역을 수복한 전투이다. 가토가 이끄는 일본군이 회령에 오자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켜 가토에게 투항하고 조선의 왕자를 넘겨주었고 일본군은 이들에게 명천 이북의 8곳을 맡겼다. 당시 경성에 있던 정문부는 군사를 모아 회령에서 국경인 등 반란세력을 처단하고 경성, 장평, 임명, 백탑교 등 네 곳에서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다. 이 전투는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전투 승리와 함께 임진왜란의 국면을 조선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북관대첩 (北關大捷)
북관대첩은 임진왜란 중인 1592년 9월부터 1593년 2월까지 함경도 북평사 정문부가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가 점령한 함경도 북부지역을 수복한 전투이다. 가토가 이끄는 일본군이 회령에 오자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켜 가토에게 투항하고 조선의 왕자를 넘겨주었고 일본군은 이들에게 명천 이북의 8곳을 맡겼다. 당시 경성에 있던 정문부는 군사를 모아 회령에서 국경인 등 반란세력을 처단하고 경성, 장평, 임명, 백탑교 등 네 곳에서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다. 이 전투는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전투 승리와 함께 임진왜란의 국면을 조선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북한 함경북도 김책시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관련 전승 기념비.
북관대첩비 (北關大捷碑)
북한 함경북도 김책시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관련 전승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