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주리_학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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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 출신으로 천도교 전교사로서 구국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화성 지역 항일운동을 확산시켰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성열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성열 (金聖烈)
김성열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 출신으로 천도교 전교사로서 구국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화성 지역 항일운동을 확산시켰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성열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세열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으며, 향남면 발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성열의 동생으로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세열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세열 (金世烈)
김세열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으며, 향남면 발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성열의 동생으로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세열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주남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수원군 팔탄면에서 태어났으며,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김성열이다.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고주리에서 김주남 가족 6명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김주남 (金周男)
김주남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수원군 팔탄면에서 태어났으며,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김성열이다.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고주리에서 김주남 가족 6명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김주업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를 조직한 김성열이었다.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수원경찰서 등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김주업은 고주리에서 가족 6명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김주업 (金周業)
김주업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를 조직한 김성열이었다.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수원경찰서 등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김주업은 고주리에서 가족 6명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김흥렬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전교사와 순회교사로서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가족 6명이 마을 주민들과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검거되어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 김흥렬 일가 6명은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김흥렬 (金興烈)
김흥렬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전교사와 순회교사로서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가족 6명이 마을 주민들과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검거되어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 김흥렬 일가 6명은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김흥복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일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김흥복의 가족은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으나,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흥복을 비롯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흥복 (金興福)
김흥복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일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김흥복의 가족은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으나,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흥복을 비롯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