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국조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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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기수는 조선 전기 예조좌랑, 부안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선조대 문과 별시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예조좌랑과 부안현감 등에 제수되었으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다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시문학(詩文學)과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특히 『주역(周易)』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였다.
곽기수 (郭期壽)
곽기수는 조선 전기 예조좌랑, 부안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선조대 문과 별시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예조좌랑과 부안현감 등에 제수되었으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다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시문학(詩文學)과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특히 『주역(周易)』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였다.
송흠은 조선 전기 16세기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 겸 문신이다. 성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관직에 물러나 후학 양성 및 학문에 힘썼다. 중종반정 이후 관직에 다시 나아갔다. 모친이 연로하자 봉양을 위해 외직을 신청해서 근무하였다. 모친을 잘 봉양하였고, 상을 당해서 관련 의례에 정성을 다해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송흠 (宋欽)
송흠은 조선 전기 16세기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 겸 문신이다. 성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관직에 물러나 후학 양성 및 학문에 힘썼다. 중종반정 이후 관직에 다시 나아갔다. 모친이 연로하자 봉양을 위해 외직을 신청해서 근무하였다. 모친을 잘 봉양하였고, 상을 당해서 관련 의례에 정성을 다해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인물고』는 조선 후기 정조 연간에 왕명으로 조선 초기부터 영조 때까지의 중요 인물들의 행적을 수록한 인물지이다. 수록 대상 인물은 1,795명이며, 성명 · 본관 · 생몰년 등의 인적 사항과 중요 언행과 업적을 정리하고 있다. 규장각본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와 함께 조선 후기에 나온 가장 방대한 국가에서 편찬한 종합 인물지이다.
인물고 (人物考)
『인물고』는 조선 후기 정조 연간에 왕명으로 조선 초기부터 영조 때까지의 중요 인물들의 행적을 수록한 인물지이다. 수록 대상 인물은 1,795명이며, 성명 · 본관 · 생몰년 등의 인적 사항과 중요 언행과 업적을 정리하고 있다. 규장각본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와 함께 조선 후기에 나온 가장 방대한 국가에서 편찬한 종합 인물지이다.
이적은 조선 전기 중종 대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와 교리(校理)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적의 성격과 능력 문제 때문에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반면, 『국조인물고』에는 그의 성품이 순박하고 온화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적 (李迪)
이적은 조선 전기 중종 대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와 교리(校理)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적의 성격과 능력 문제 때문에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반면, 『국조인물고』에는 그의 성품이 순박하고 온화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수는 조선 전기 인조 대 성균관 전적, 형조좌랑, 영춘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39년(인조 17)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형조좌랑까지 제수되었다가 영춘현감으로 임명되어 외직에 나아갔다. 『효종실록』에는 최수가 군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수령으로 평가되어 파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 『국조인물고』에는 영춘현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수 (崔琇)
최수는 조선 전기 인조 대 성균관 전적, 형조좌랑, 영춘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39년(인조 17)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형조좌랑까지 제수되었다가 영춘현감으로 임명되어 외직에 나아갔다. 『효종실록』에는 최수가 군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수령으로 평가되어 파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 『국조인물고』에는 영춘현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