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崔琇)는 1589년(선조 22)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실(伯實)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최선(崔璿), 증조할아버지는 최공우(崔公佑), 할아버지는 최중륜(崔重崙)이다. 고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까지는 모두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진사시에 입격하여 직장(直長)을 지낸 최진영(崔震榮)이다. 어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로, 부사용(副司勇) 박이정(朴而禎)의 딸이다. 부인 광산김씨(光山金氏)는 현감을 지낸 김덕일(金德一)의 딸이다. 최정(崔珽)이 동생이다. 슬하에 자녀는 2남 3녀이다. 큰아들 최하봉(崔夏封)은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작은아들은 최노봉(崔魯封)이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시작해 1615년(광해군 7)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하였다. 이후 과거에 응시하지 않다가 1637년(인조 15) 추천을 받아 목릉참봉에 임명되었다. 1639년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45년 전적(典籍)으로 승진되었고, 다음 해 형조좌랑에 제수되었다. 형조좌랑에 제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춘현감으로 파견되어 고을을 다스렸다.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암행어사(暗行御史)로 파견되었던 홍처대(洪處大)와 민정중(閔鼎重)이 군정(軍政)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수령 중 한 명으로 최수를 국왕에게 보고하면서 파직되었다고 한다.
다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는 영춘현 백성들의 현감 최수에 대한 평가는 좋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는 그의 관력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1654년(효종 5) 66세에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