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근시_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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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는 고려시대에 국왕의 각종 정무를 시봉하기 위하여 문신 관료 중에서 선발한 근시 조직이다. 급제와 같은 개인적 능력과 가문이라는 혈연 배경을 고려하여 선발하였다. 내시성 또는 내시원에 겸직의 형태로 속하였으며, 주로 국왕의 정무를 시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대부분 문신 관료 중에서 선발하였으나 무신정권기 이후 무신이나 환관 중에서도 선발되는 이들이 늘면서 그 위상이 점차 하락하였다.
내시 (內侍)
내시는 고려시대에 국왕의 각종 정무를 시봉하기 위하여 문신 관료 중에서 선발한 근시 조직이다. 급제와 같은 개인적 능력과 가문이라는 혈연 배경을 고려하여 선발하였다. 내시성 또는 내시원에 겸직의 형태로 속하였으며, 주로 국왕의 정무를 시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대부분 문신 관료 중에서 선발하였으나 무신정권기 이후 무신이나 환관 중에서도 선발되는 이들이 늘면서 그 위상이 점차 하락하였다.
신라시대의 관서.
세택 (洗宅)
신라시대의 관서.
파오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파오치는 주로 공민왕, 우왕 대에 근시 조직으로 활동하던 것으로 보인다. 1358년(공민왕 7)에 왜구가 교동(喬桐)에 침입하자 파오치 3개 번(番)에서 각각 10인을 징발하여 내보냈고, 1375년(우왕 1)에는 파오치 등이 내용(內用)을 빙자하여 주현(州縣)에 세금 등을 마구 거두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파오치 (波吾赤)
파오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파오치는 주로 공민왕, 우왕 대에 근시 조직으로 활동하던 것으로 보인다. 1358년(공민왕 7)에 왜구가 교동(喬桐)에 침입하자 파오치 3개 번(番)에서 각각 10인을 징발하여 내보냈고, 1375년(우왕 1)에는 파오치 등이 내용(內用)을 빙자하여 주현(州縣)에 세금 등을 마구 거두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조라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고려사』 병지의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단 한 번 나온다. 곧 내승(內乘)과 응방(鷹坊)을 폐지하면서 여기에 속해 있던 대정(隊正)과 산직(散職)을 조라치를 비롯해 팔가치(八加赤), 순군(巡軍) 등에 나누어 소속시켰다.
조라치 (詔羅赤▽)
조라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고려사』 병지의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단 한 번 나온다. 곧 내승(內乘)과 응방(鷹坊)을 폐지하면서 여기에 속해 있던 대정(隊正)과 산직(散職)을 조라치를 비롯해 팔가치(八加赤), 순군(巡軍) 등에 나누어 소속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