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기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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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원나라와 명나라의 요구로 국내에서 선발되어 원·명나라에 보내진 부녀와 처녀이다. 1274년(원종 15)에 몽골의 요구로 시작된 공녀 차출은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80년간 50여 회 이상 이루어졌다. 원의 지속적인 공녀 요구로 고려에는 조혼(早婚)의 풍습이 생겼고, 원에서는 고려풍(高麗風)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공녀 요구는 명의 건국 후에도 잠시 이루어졌으나,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공녀 (貢女)
공녀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원나라와 명나라의 요구로 국내에서 선발되어 원·명나라에 보내진 부녀와 처녀이다. 1274년(원종 15)에 몽골의 요구로 시작된 공녀 차출은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80년간 50여 회 이상 이루어졌다. 원의 지속적인 공녀 요구로 고려에는 조혼(早婚)의 풍습이 생겼고, 원에서는 고려풍(高麗風)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공녀 요구는 명의 건국 후에도 잠시 이루어졌으나,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덕흥군은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으로 도망해 있다가 1362년(공민왕 11) 원에서 공민왕을 폐위하고자 했을 때 그를 대신해 고려 국왕에 세워졌다. 고려 국왕에 오르기 위해 최유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군에 패하고 원으로 돌아갔다.
덕흥군 (德興君)
덕흥군은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으로 도망해 있다가 1362년(공민왕 11) 원에서 공민왕을 폐위하고자 했을 때 그를 대신해 고려 국왕에 세워졌다. 고려 국왕에 오르기 위해 최유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군에 패하고 원으로 돌아갔다.
고려 후기에 삼사좌사 · 찬성사 · 덕산부원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생인 기황후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일삼다가 공민왕에 의해 숙청된 관리.
기륜 (奇輪)
고려 후기에 삼사좌사 · 찬성사 · 덕산부원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생인 기황후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일삼다가 공민왕에 의해 숙청된 관리.
고려 후기에, 한림학사, 원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생인 기황후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일삼다가 공민왕에 의해 숙청된 관리.
기원 (奇轅)
고려 후기에, 한림학사, 원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생인 기황후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일삼다가 공민왕에 의해 숙청된 관리.
고려 후기에, 산원, 총부산랑, 영안왕 등을 역임한 무신.
기자오 (奇子敖)
고려 후기에, 산원, 총부산랑, 영안왕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에, 정치도감좌랑, 전법사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서호 (徐浩)
고려 후기에, 정치도감좌랑, 전법사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최유 (崔濡)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자정원은 고려 후기 충선왕이 설치한 관서이다. 몽골(원)에 존재하던 황후의 재정 관련 기구를 본떠 만든 기구로 생각된다. 하지만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폐지되었다. 공교롭게도 나중에 몽골(원)의 기황후의 재정 기구 역시도 자정원으로 같은 명칭이었다.
자정원 (資政院)
자정원은 고려 후기 충선왕이 설치한 관서이다. 몽골(원)에 존재하던 황후의 재정 관련 기구를 본떠 만든 기구로 생각된다. 하지만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폐지되었다. 공교롭게도 나중에 몽골(원)의 기황후의 재정 기구 역시도 자정원으로 같은 명칭이었다.
부원세력은 원나라에 기대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이다. 부원배라고도 부른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 기원하였으며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려 영토 점령에 적극 협조한 부류와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에 적극 협조해 고려의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부류가 있다. 원간섭기에 왕권을 위협하면서 고려 정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 운동으로 다수가 제거되었으며, 신흥무장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축출되었다.
부원세력 (附元勢力)
부원세력은 원나라에 기대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이다. 부원배라고도 부른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 기원하였으며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려 영토 점령에 적극 협조한 부류와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에 적극 협조해 고려의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부류가 있다. 원간섭기에 왕권을 위협하면서 고려 정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 운동으로 다수가 제거되었으며, 신흥무장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축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