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정치도감좌랑, 전법사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기황후 족제(族弟) 삼만(三萬) 치죄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치도감좌랑(整治都監佐?)|전법사(典法司) 좌랑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옥걸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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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정치도감좌랑, 전법사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47년(충목왕 3) 극도로 문란하여진 전정(田政)을 바로잡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정치도감(整治都監)의 관원인 좌랑(佐郎)으로 있었는데, 원나라 순제(順帝)의 비(妃)가 된 기황후(奇皇后)의 세력을 믿고 남의 땅을 빼앗는 등 불법을 자행하던 기황후의 족제(族弟) 삼만(三萬)을 잡아다 치죄하던 중 죽인 사건으로 인하여 교감(校勘) 전녹생(田祿生)과 함께 행성옥(行省獄)에 갇혔다가 곧 석방되었다.

그러나 몇 달 안 되어 다시 원나라에서 직성사인(直省舍人) 승가노(僧家奴)를 보내와 이 일의 책임을 물어 정치도감의 관원을 국문하였으므로 백문보(白文寶)·전녹생 등 15인과 함께 곤장을 맞았다. 이로 인하여 정치(整治)가 더욱 해이하고 산만해졌다.

전법사(典法司) 좌랑으로 있던 1352년(공민왕 1) 왕이 총랑(摠郎) 정운경(鄭云敬)과 함께 내전으로 불러 술을 내렸는데, 이는 두 사람이 법을 지킴에 있어 엄정하여 권력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으므로 이를 장려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동사강목(東史綱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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