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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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만화』는 1950년 육군본부에서 발행한 만화 기관지이다. 당시 신예 만화가 김성환, 정준용, 이상호, 고상영, 정한기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1950년 12월 30일자에 김성환의 「고바우」가 최초로 실렸다는 기록이 있다. 국방부에서 발행한 『만화승리』와 함께 대표적인 병영만화로 꼽힌다.
사병만화 (士兵漫畵)
『사병만화』는 1950년 육군본부에서 발행한 만화 기관지이다. 당시 신예 만화가 김성환, 정준용, 이상호, 고상영, 정한기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1950년 12월 30일자에 김성환의 「고바우」가 최초로 실렸다는 기록이 있다. 국방부에서 발행한 『만화승리』와 함께 대표적인 병영만화로 꼽힌다.
『만화승리』는 1950년 경 국방부 정훈국에서 『승리일보』의 부록으로 발행한 주간 만화신문이다. 주로 만화가 김성환이 편집과 제작 전반을 담당했다. 김성환를 비롯해 고상영, 정준용, 김윤항, 전성보, 유준상, 이상호 등이 참여했다. 연재만화로 김성환의 「김멍텅구리씨」, 고상영의 「모돌이」가 실려 있으며, 각종 소식과 주변의 정세를 다양한 컷 형식의 만화로 다뤘다. 십만 부 이상 인쇄되어 국군 전체에 배포되었다.
만화승리 (漫畵勝利)
『만화승리』는 1950년 경 국방부 정훈국에서 『승리일보』의 부록으로 발행한 주간 만화신문이다. 주로 만화가 김성환이 편집과 제작 전반을 담당했다. 김성환를 비롯해 고상영, 정준용, 김윤항, 전성보, 유준상, 이상호 등이 참여했다. 연재만화로 김성환의 「김멍텅구리씨」, 고상영의 「모돌이」가 실려 있으며, 각종 소식과 주변의 정세를 다양한 컷 형식의 만화로 다뤘다. 십만 부 이상 인쇄되어 국군 전체에 배포되었다.
「꺼꾸리군 장다리군」은 1953년 김성환이 잡지 『학원』에 연재한 학원 명랑만화이다. 키가 작은 꺼꾸리군과 키가 큰 장다리군의 대비되는 외형의 두 인물들이 벌이는 코믹한 학교생활을 보여주는 학원 만화의 출발점 격이 되는 작품이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최덕교에 의하면, 7월호는 「꺼꾸리군 장다리군」의 인기에 힘입어 2만부를 찍었다고 한다. 1977년에는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꺼꾸리군 장다리군 (꺼꾸리君 장다리君)
「꺼꾸리군 장다리군」은 1953년 김성환이 잡지 『학원』에 연재한 학원 명랑만화이다. 키가 작은 꺼꾸리군과 키가 큰 장다리군의 대비되는 외형의 두 인물들이 벌이는 코믹한 학교생활을 보여주는 학원 만화의 출발점 격이 되는 작품이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최덕교에 의하면, 7월호는 「꺼꾸리군 장다리군」의 인기에 힘입어 2만부를 찍었다고 한다. 1977년에는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현대만화협회는 1962년 김성환, 김기율 등 신문과 잡지 연재 만화가 위주로 조직된 만화가 단체이다. 매체 작가들의 권익과 친목을 위해 결성되었다. 김성환이 초대 회장을 맡았고, 회원으로는 김기율 이재화 등이 있었다. 준회원으로 문인 정비석, 우경희, 나애심, 박승훈 등 문인도 참여했고, 주로 회합 장소는 명동 순정다방에서 모였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만화가 단체가 생겨났으며 일반 단행본 작가와 미디어 작가는 따로 협회를 만들어 유지하는 풍토가 지속되었다.
현대만화협회 (現代漫畵協會)
현대만화협회는 1962년 김성환, 김기율 등 신문과 잡지 연재 만화가 위주로 조직된 만화가 단체이다. 매체 작가들의 권익과 친목을 위해 결성되었다. 김성환이 초대 회장을 맡았고, 회원으로는 김기율 이재화 등이 있었다. 준회원으로 문인 정비석, 우경희, 나애심, 박승훈 등 문인도 참여했고, 주로 회합 장소는 명동 순정다방에서 모였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만화가 단체가 생겨났으며 일반 단행본 작가와 미디어 작가는 따로 협회를 만들어 유지하는 풍토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