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 시기 군부에서는 만화 기관지를 많이 발행했다. 국방부 정훈국에서는 미술대를 설치해 『만화승리』를 발행했고, 육군본부에서는 작전국에 심리전과를 설치해 『사병만화』를 발행했다. 당시 신예 만화가 김성환, 정준용, 이상호, 고상영, 정한기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사병만화』는 현재 실물이 확인되지 않아 자세한 구성과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김성환이 1950년 12월 30일자에 「고바우」를 실었다는 기록이 있다.
“생각하면 고바우는 6·25 동란의 그 비극적인 와중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중략…) 그 시골집의 방안엔 역시 나처럼 시골에 다녀오던 피난민 서너 명이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그 시간에도 나는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아서 아예 툇마루에 걸터앉아 골똘히 뭔가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따금 방안으로부터 들려오는 이 가는 소리와 잠꼬대 소리를 들어가며, 나는 그때 지금까지 이 세상에 있어 본 적이 없는 특정한 만화의 주인공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남들이 창조해 낸 주인공과는 판이한 모습의 체격과 표정과 성격을 갖고 있는, 그러면서도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만화의 주인공을 생각하다 그만 툇마루 위에서 잠이 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 후 집에 돌아와 9·28 수복이 될 때까지 공산군을 피하여 다락에 숨어 지내면서 그때 그 시골집의 툇마루에서 생각시 시작한 만화의 주인공을 형상화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고바우 영감인 것이다. (… 중략…) 그런데 최초로 「고바우」가 실린 지면은 『사병만화』라는 잡지로 그 발행일은 1950년 12월 30일이 된다. - 김성환 『고바우現代史』 (제1권, 1987), 11~16쪽
김성환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고등학교 졸업반으로 18세였으며,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라는 제목의 만화를 연재하고 있을 때였다.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혼돈과 포화로 가득한 서울에 남아 90여일을 다락방에 숨어 지내며 그곳에서 목격한 서울의 참상을 그려냈다.
9·28 직후에는 조각가 윤호중과 종군기자 박성환에 의해 발행된 『만화신보』에 참여했으며, 1·4후퇴 때엔 국방부에서 발행한 『만화승리』의 만화담당군이 되어 대구와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육군본부 기관지인 『육군화보』, 『웃음과사병』의 편집 담당자로 활동했다.
국방부에서 발행한 『만화승리』와 함께 대표적인 병영만화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