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춘추』는 주간춘추사에서 발행한 시사종합 주간지로, 1960년 4·19혁명 직후이자 허정의 과도 내각 체제를 지나, 8월 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7월에 창간했다. 이 시기에 주간지 창간이 잇따랐는데, 이는 일견 4·19혁명 직후 군정법령제88호를 폐기하면서 정기간행물의 발행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고, ‘ 국가보안법’의 언론제한조항이나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으로 ‘협상선거법’에 삽입되었던 언론 단속 조항이 삭제되는 등 언론 자유 정책의 영향이기도 했다.
『주간춘추』는 지성인의 시사종합지임을 표방했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비평과 각계각층의 의견 기사를 편집 주류로 삼았다. 신동헌 등이 표지를 그렸고, 본지에 이상호, 부석언 등의 만평이 게재됐다. 가격은 4×6배판에 100환, 발행인은 이월준이었다.
창간사에 4·19혁명에 대한 찬사와 더불어 민의원, 참의원 양대 선거를 앞둔 언론사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창간호의 특집도 두 가지 현안을 중요하게 다루며 주요 의제로 삼았다. 특집 기사 제목은 「총선거에 관한 각 정당의 주장」, 「4.19와 군부와 경무대-이제야 입을 연 당시의 계엄사령관」이다.
이외에 금주의 화제, 주간동향, 연속대담, 외국인이 본 한국, 춘추해부, 연속실화 등으로 구성됐다. 매호마다 정치계 동향을 긴밀하게 다뤘으며, 「대학생의 발언」을 고정 배치하고, 국제정세나 외교적 사안도 다양한 필진을 통해 담으려 했다.
8월 12일 총선거에서 윤보선이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총리 등 내각 발표를 앞둔 8월 25일자 제7호에는 정치 관련 기사 외에 특별한 읽을거리로 김용환의 「코주부 동경통신」과 정비석의 「워싱톤 통신」이 실렸다.
당시 김용환은 1959년부터 일본 동경에 있는 미극동사령부 작전국 심리전과에 근무하며 미군 공보지 『자유의 벗』에 삽화와 만화를 게재하고 있었다. 『주간춘추』에 실린 「코주부 동경통신」에는 ‘본지동경특파원’이라는 직책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유엔군 관계로 동경에 체류중인 코주부 김용환씨! 동시에 그는 본지특파원이기도 하다. 그가 본 동경의 이모저모와 이국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생활…… 이것은 그 제일신이다.” 이에 김용환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내가 동경에 온 후로 꼭 1년이 될락말락하는데 그동안 이곳 저곳에 들락날락하는 한국인 명사들이나 또는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 사람들 얘기를 첫 「루포루타-쥬」로 보낸다”고 자신의 글을 소개한다.
주요 내용으로 동경에서 유진오와 이호, 백선엽 등 한국 유명인과 만난 일화, 일본교향악단을 지휘한 안익태가 일본인으로 하여금 우리나라말로 애국가를 부르게 했다는 소식, 일본 사회에 영향력 있는 한국요리점 청향원(淸香園)의 주인 김수사(金修史)로부터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받은 일, 6·25 사변 당시 북한으로 납치되어 간 박열 씨의 부인으로 현재는 동경에서 『코리언리브맄』 동경지사를 경영하고 있는 장의숙(張義淑) 여사의 소식 등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