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만문 ()

만화
문헌
1938년, 최영수가 창간한 최초의 월간 만문만화 전문잡지.
문헌/연속간행물
창간 연도
1938년
간행자
최영수
간행주기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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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만화만문』은 1938년 최영수가 창간한 최초의 월간 만문만화 전문잡지이다. 일종의 유머 잡지로 국판 80쪽~100여쪽, 값은 25환이었다. 1938년 8월호를 1집으로 10월까지 총 3집을 발간한 기록이 있다. 훗날 최영수는 이 잡지를 “기괴한 유머잡지”라고 표현했는데, 만화 없이 글로만 구성된 잡지였기 때문이다.

정의
1938년, 최영수가 창간한 최초의 월간 만문만화 전문잡지.
창간 경위

일송 최영수(崔永秀, 1911~1950년 추정)는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일본의 가와바다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30년대부터 1950년 한국전쟁 직후 납북되기 전까지 기자, 만화가, 수필가, 영화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31년 『동아일보』 안성지국 기자로 활동하다가, 1933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신동아’ 부에서 『신가정』을 담당했다. 동아일보 전속으로 수많은 만화, 삽화, 만문만화를 그렸다.

동아일보에 발표한 주요 작품으로 연재만화 「복남의 탐험기」[1932], 「전억망 일대기」[1933], 「얼간 선생」[1935], 「뚱딴지」[1938]와 만문만화 「봄이 쓰게 하는 만문, 봄이 그리는 만화」[1933] 등이 있다.

최영수는 1937년 건강상의 이유로 동아일보사를 그만두었고, 1년 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1938년 만화만문사(漫畫漫文社)를 세우고 같은 해 8월에 『만화만문(漫畫漫文)』을 창간한다. 일종의 유머 잡지로 분량은 국판 80~100여 쪽, 값은 25환이었다.

내용과 구성

손상익의 『한국만화통사』에 따르면 창간호 발행일은 1938년 7월 1일로, 최영수는 「창간사(創刊辭)」에서 편집진이나 사무실도 갖추지 않고, 혼자서 집안에 작업실을 마련했으며, 편집을 도맡아 한 개인창작물이라는 것을 밝혔다. 창간호에는 노산 이은상의 「만(漫)」이라는 기고글이 실렸으며, 만화는 3쪽이 실렸다.

1938년 8월호를 1집으로 10월까지 총 3집을 발간한 기록이 있다. 1938년 8월, 10월에 나온 『동아일보』 「신간소개」란에 따르면, 9월호에는 “여배우 인상기, 명사교태사진전, 유모어 단식 강좌” 등의 내용이 실렸고, 10월호에는 “명사(名士) 수수께끼, 유머어 지방색, 우리는 만성자살병환자, 추가만경(秋街漫景) 등 총 100페이지 폭소편”이 구성되었다.

한편 1938년 9월 14일 『동아일보』 기사란에는 “극연좌(劇硏座)의 추기대공연은 14일부터 시작되는데, 이날 잡지 ‘만화만문’을 선착자 200명에 진정(進呈)한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훗날 최영수는 『백민』 1948년 1월호에 실은 「나의 만화생활 자서」라는 글에서 이 잡지를 “기괴한 유머잡지”라고 표현한다. 만화 없이 글로만 구성된 잡지였기 때문이다.

평가 및 의의

최영수가 만화가로 활동한 것은 10여 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동아일보사의 여러 매체를 중심으로 보여준 그의 활약은 1930년대 만화사를 대표한다. 만화연구자 서은영은 『만화만문』을 “글로써 그린 만화잡지”로 평가한다. 최영수는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을 가장 적합한 표현 형식으로 ‘풍자’를 드는데, 그 풍자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매체가 만화라고 여겼다. 그가 1930년대 내내 회화성을 강조하며 만화를 그린 것은 바로 이 풍자성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영수에게 유머소설과 꽁트는 “글로써 그린 만화”였고, 『만화만문』은 이를 구현한 잡지라는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

『백민』(백민문화사, 1948. 1.)
『동아일보』(1938. 10. 19.)
『동아일보』(1938. 9. 14.)
『동아일보』(1938. 8. 17.)

단행본

박석환, 『한국만화정전 신문연재만화편』(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9)
최영수, 최영재, 『마지막 가족사진』(지경사, 2016)
손상익, 『(개정판) 한국만화통사(상)』(시공사, 1999)

논문

서은영, 「1930년대 기자-만화가의 한 양상: 최영수를 중심으로」(『대중서사연구』 23-4, 대중서사학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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