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문만화 ()

만화
개념
짧은 글인 만문과 만화로 이루어진 형태의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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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만문만화는 짧은 글인 만문과 만화로 이루어진 형태의 만화이다. 즉 칸 안에 이미지와 말풍선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만화와 달리 여러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과 그 글의 내용을 데포르메된 형태로 그린 만화를 덧붙인 형식을 말한다.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세태풍자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1925년 방정환에 의해 그 용어가 처음 소개된 이후 그 해 11월, 안석주가 「만화로 본 경성」을 시작으로 만문만화를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정의
짧은 글인 만문과 만화로 이루어진 형태의 만화.
일본 ‘만화만문’의 수용

‘만문만화(漫文漫画)’라는 용어는 일본 만화가 오카모토 잇페이[岡本一平, 1886~1948]가 처음 고안한 만화장르인 ‘만문만화’에서 비롯되었다. 칸 안에 이미지와 말풍선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만화와 달리 여러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과 그 글의 내용을 주1된 형태로 그린 만화를 덧붙인 형식을 말한다.

오카모토 잇페이는 1912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주로 탐방만화와 풍속 스케치를 그렸고, 여기에 재치있는 짧은 문장들[短文]을 덧붙여 문장가로도 유명해졌다. 그는 주로 세태를 풍자하는 글과 그림의 작품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로 ‘만화만문’이라고 처음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한국에서는 ‘만문만화’로 쓰였다.

한국에서 ‘만문만화’라는 용어는 『신여성』 1925년 1월호에 게재된 「셈치르기」라는 글에서 ‘은(銀)파리[방정환]’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방정환은 “무해무독하고 무리무욕(無利無慾)한 무탈한 우슴”을 지닌 것으로 이 글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만화 없이 만문[글]으로만 게재한 글이지만 1925년에 이미 식민지 조선에 만문만화가 소개되었고, 이후 석영 안석주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초창기 만문만화를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은 안석주였다. 그는 1924년과 1926년, 두 차례에 걸친 짧은 도쿄 유학을 통해 일본 만화만문과 출판문화의 성행을 목격한 후 영향을 받았다. 도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안석주는 1925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형식의 만화를 게재하게 되는데, 그 해 11월에 선보였던 「만화로 본 경성」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선보인 만문만화이다.

문장(文)과 그림(畵)을 겸비한 만화가의 탄생

만화만문이 유행했던 다이쇼 시기 일본에서는 이미지만을 제시하는 만화가가 아니라 ‘문학성을 겸비한 만화가’가 대두되었다. 오카모토 잇페이처럼 만화가에게도 소위 문장가로서의 능력을 요청되었던 셈이다. 만화만문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근대적 글쓰기의 대두를 의미했고, 출판문화의 상업성을 한 면을 이끌었다. 이 시기에 도쿄에서 유학했던 안석주, 최영수는 귀국 후 각각 『조선일보』『동아일보』를 중심으로 만화와 만문만화를 적극적으로 게재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만문만화는 ‘그림을 그리면서 글도 쓸 줄 아는’ 독특한 형태의 작가군을 탄생시켰다. 잡문, 단문일지라도 글을 쓸 줄 아는 능력, 그리고 그림도 그릴 줄 아는 능력을 동시에 갖춘 능통한 이들이 바로 만문만화가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만화를 그렸다고 해서 모두 만문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만문만화를 그렸던 만화가들은 만화, 만문만화뿐 아니라 기행문, 탐방문, 수필, 비평문, 시,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게재하며 자신들의 문장력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만문만화가로는 안석주, 최영수, 김규택, 이주홍, 이갑기 등이 있다.

만문만화의 형식

1930년 12월 7일에 게재된 『조선일보』의 신춘현상문예 공모 기사는 만문만화의 형식을 “1930년을 회상하거나 1년의 전망이거나 시사 · 시대 풍자를 제재로 하되 문(文)은 1행 14자 50행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만문만화는 대체로 한 칸의 만화와 짧은 글을 그 형식으로 삼았다. 물론 모든 만문만화가 이 규정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김규택의 일명 ‘모던시리즈’는 현상문예공모 규정에는 벗어나지만 긴 형식의 고전소설을 짧은 스토리로 단문화했으며, 거기에 희화화되고 풍자적인 이미지의 만화를 붙였다. 그리고 그는 만화의 무형식성, 무정형성을 속성으로 ‘모던시리즈’를 자유롭게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만문만화는 문장[만문]의 길이와 스타일은 제각각이었으며 특별히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지만[‘무형식의 형식’], 대체로 백행 이상의 긴 글을 찾아보기는 힘든 만큼 단문화(短文化) 경향이 강했다. 최영수는 도쿄 유학 직후 조선에서 실행하고 싶었던 “장문 고착 형태를 뚫고 새로운 감각적인 형태”의 “장문의 단문화, 회화화”를 시도했는데, 이것이 바로 1930년대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던 만문만화였다. 즉 이들에게 만문만화란 문자텍스트에서 이미지텍스트로 이행되는 근대적 글쓰기의 전향이었고, ‘풍자’, ‘유우머’, ‘넌센스’와 같은 대중적 기호에 영합하는 ‘웃음’을 지향하는 근대적 글쓰기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시미즈 이사오, 『일본 만화의 역사』( 김광석 옮김, 신한미디어, 2001)

논문

서은영, 「文과 畵의 절합: 만문만화(漫文漫画)를 중심으로」(『대중서사연구』 27-2, 대중서사학회, 2021)
서은영, 「1930년대 기자-만화가의 한 양상: 최영수를 중심으로」(『대중서사연구』 23-4, 대중서사학회, 2017)
주석
주1

어떤 대상의 형태가 달라지는 일. 또는 달라지게 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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