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시기의 만화방은 만화독자, 만화출판사, 만화유통업자의 거점공간이 되었다. 즉 만화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가 만화방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었다. 만화방에서는 싼 가격에 대본소 만화를 읽거나 대여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유료로 TV시청도 가능하도록 텔레비전도 갖추었다. 한 만화방에서는 만화책 5권을 내거나 현금 3원씩을 내면 TV시청을 허용했다.
19641966년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만화방은 “서울 시내만도 1천 여 개소, 전국에 4,500개 소가 2,3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 목(木)의자를 놓고 책 한권에 12원씩 받고 빌려주며, 하루 30~40여명”이 드나들고 있었다. 만화방은 만화책을 읽고 유통하는 도서 공간이자, 1960년대 레슬링, 복싱 등 스포츠의 인기와 더불어 아이들의 TV시청 공간으로써 당대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동만화와 만화방의 인기가 늘어나자 행정당국과 학부모 단체에서는 이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언론에서는 만화방의 열악한 환경과 불법으로 영업하는 악덕업자에 대한 단속 필요성도 주장했다.
또한 만화방은 온갖 범죄의 온상이라는 기사도 쏟아냈다. 실제로 1966년 5월에는 서울 동대문구 만화방에서 자리다툼 중에 9살 어린이가 10살 어린이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1960~70년대, 만화방은 점차 부랑아들이 모이는 유해 공간이자 불량만화로 아동들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만화방은 1970년대 후반까지 증가 추세였고, 1980년대에는 이현세, 박봉성, 허영만, 고행석을 중심으로 한 만화방 만화가 대규모 프로덕션 제작으로 유통된다. 박인하와 김낙호는 1980년대 만화방의 유통 방식을 “프로덕션 제작-만화방 총판-지역 총판-외무사원-만화방”으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