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낙양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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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동맹 집행위원,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 선전부 간부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이다. 이칭으로 김추봉, 김창기가 있다. 1891년(고종 28)에 출생하여 1934년에 사망했다. 1920년 조선노동대회를 발기하고 간사로 활동하였다. 1923년 ‘서울파’ 공산주의 그룹의 전위조직인 고려공산동맹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블라디보스토크 코민테른집행위원회에 참석하여 조선공산당 결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8년 조선공산당이 해체되자 1929년 길림성으로 가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 선전부 간부로 활동하였다.
김영만 (金榮萬)
김영만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동맹 집행위원,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 선전부 간부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이다. 이칭으로 김추봉, 김창기가 있다. 1891년(고종 28)에 출생하여 1934년에 사망했다. 1920년 조선노동대회를 발기하고 간사로 활동하였다. 1923년 ‘서울파’ 공산주의 그룹의 전위조직인 고려공산동맹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블라디보스토크 코민테른집행위원회에 참석하여 조선공산당 결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8년 조선공산당이 해체되자 1929년 길림성으로 가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 선전부 간부로 활동하였다.
북성회는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 단체이다. 흑도회에서 분리한 김약수 등이 한국과 일본의 프롤레타리아의 결합을 굳게 하며 재일조선인노동자의 단일조합을 창설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국내에서 활동하기 위해 전진 기지로서 토요회, 건설사, 북풍회 등이 조직되었다. 순회 강연단을 편성하여 서울·평양·대구·광주·마산·진주·김해 등지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일본 사회주의운동지도자들을 초빙하여 한국과 일본 노동운동의 연계를 위해 월례집회를 열었다. 1925년 일본에 남아 있던 회원들이 새로운 대중 본위의 신사회 건설을 위해 북성회를 해산하고 일월회를 조직하였다.
북성회 (北星會)
북성회는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 단체이다. 흑도회에서 분리한 김약수 등이 한국과 일본의 프롤레타리아의 결합을 굳게 하며 재일조선인노동자의 단일조합을 창설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국내에서 활동하기 위해 전진 기지로서 토요회, 건설사, 북풍회 등이 조직되었다. 순회 강연단을 편성하여 서울·평양·대구·광주·마산·진주·김해 등지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일본 사회주의운동지도자들을 초빙하여 한국과 일본 노동운동의 연계를 위해 월례집회를 열었다. 1925년 일본에 남아 있던 회원들이 새로운 대중 본위의 신사회 건설을 위해 북성회를 해산하고 일월회를 조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