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납공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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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노비공은 조선시대에 내수사에 소속된 납공노비의 신공(身貢)을 말한다. 내노비들은 중앙 관청인 내수사에서 신역을 바치는 인원보다 전국 각지에 산재한 자신들의 농장을 경작하거나 관리하며 생활하는 인원이 많았고 이들이 바로 ‘내노비공’을 납부하는 대상이었다. 1753년(영조 29)에 실시된 추쇄에 의해 작성된 전국의 각 지역별 내노비공 납부자 수는 총 5574명이었으며, 1801년(순조 1)에 신공 납부의 의무가 있는 내노비를 혁파할 때 종량(從良)된 자는 모두 3만 6974명이었다. 이로써 내노비공은 법제상 사라지게 되었다.
내노비공 (內奴婢貢)
내노비공은 조선시대에 내수사에 소속된 납공노비의 신공(身貢)을 말한다. 내노비들은 중앙 관청인 내수사에서 신역을 바치는 인원보다 전국 각지에 산재한 자신들의 농장을 경작하거나 관리하며 생활하는 인원이 많았고 이들이 바로 ‘내노비공’을 납부하는 대상이었다. 1753년(영조 29)에 실시된 추쇄에 의해 작성된 전국의 각 지역별 내노비공 납부자 수는 총 5574명이었으며, 1801년(순조 1)에 신공 납부의 의무가 있는 내노비를 혁파할 때 종량(從良)된 자는 모두 3만 6974명이었다. 이로써 내노비공은 법제상 사라지게 되었다.
외거노비는 고려·조선시대에 관청이나 주인의 거주지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주어진 신공을 부담한 노비이다. 이들 외거노비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신역을 부담하였다. 고려시대 공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왕실이나 관청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였으며, 사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외방에서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였다. 조선의 공노비 중 외거노비는 입역노비·봉족노비·납공노비로 구분되며 60세까지 신역을 부담하였다. 사노비에 해당하는 외거노비는 원방노비·원처노비라고 불렀는데, 주인인 상전에게 신공을 납부하였다.
외거노비 (外居奴婢)
외거노비는 고려·조선시대에 관청이나 주인의 거주지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주어진 신공을 부담한 노비이다. 이들 외거노비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신역을 부담하였다. 고려시대 공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왕실이나 관청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였으며, 사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외방에서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였다. 조선의 공노비 중 외거노비는 입역노비·봉족노비·납공노비로 구분되며 60세까지 신역을 부담하였다. 사노비에 해당하는 외거노비는 원방노비·원처노비라고 불렀는데, 주인인 상전에게 신공을 납부하였다.
공·사노비가 소속 관서 또는 상전에게 신역(身役) 대신으로 매년 바치는 구실.
신공 (身貢)
공·사노비가 소속 관서 또는 상전에게 신역(身役) 대신으로 매년 바치는 구실.
노비선상제는 공노비가 일정 기간 서울에 와서 노동력을 바치던 제도이다. 공노비는 해당 관서에 직접 노동력을 바치는 입역 노비와 입역 대신 공물을 바치는 납공 노비로 구별된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노비는 서울로 올라와 노동력을 바쳤는데 7번으로 나누어 6개월씩 사역시켰다. 이렇게 지방에서 올라온 선상 노비는 임무에 따라 기물을 관리하는 차비노와 종친이나 관원에게 배당되는 근수노가 되었다. 직접 서울까지 와서 노동력을 바치는 데 따르는 비용 부담으로 인하여 점차 사람을 사서 올려 보내는 대립이나 서울 사람을 직접 고용하는 고립으로 전환되었다.
노비선상제 (奴婢選上制)
노비선상제는 공노비가 일정 기간 서울에 와서 노동력을 바치던 제도이다. 공노비는 해당 관서에 직접 노동력을 바치는 입역 노비와 입역 대신 공물을 바치는 납공 노비로 구별된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노비는 서울로 올라와 노동력을 바쳤는데 7번으로 나누어 6개월씩 사역시켰다. 이렇게 지방에서 올라온 선상 노비는 임무에 따라 기물을 관리하는 차비노와 종친이나 관원에게 배당되는 근수노가 되었다. 직접 서울까지 와서 노동력을 바치는 데 따르는 비용 부담으로 인하여 점차 사람을 사서 올려 보내는 대립이나 서울 사람을 직접 고용하는 고립으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