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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3~146년으로 국조왕 또는 태조대왕이라고도 한다. 모본왕 살해 후 여러 관리들이 그의 아버지 재사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재사가 나이가 많다 하여 사양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하는 동안 후한의 압력을 차단하고 서방진출을 시도하여 고구려의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변 소국의 지배세력들을 관료로 흡수하여 전제왕권적 지배체제의 토대를 갖추었다. 동생 수성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고 왕위까지 노리자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별궁에서 은거하다가 165년 1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태조왕 (太祖王)
태조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3~146년으로 국조왕 또는 태조대왕이라고도 한다. 모본왕 살해 후 여러 관리들이 그의 아버지 재사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재사가 나이가 많다 하여 사양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하는 동안 후한의 압력을 차단하고 서방진출을 시도하여 고구려의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변 소국의 지배세력들을 관료로 흡수하여 전제왕권적 지배체제의 토대를 갖추었다. 동생 수성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고 왕위까지 노리자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별궁에서 은거하다가 165년 1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에 있는 인공항구.
대방진 굴항 (大芳鎭 掘港)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에 있는 인공항구.
조선 왕조의 지방 통치 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지방에 부임한 수령이 지켜야 할 마음가짐과 업무 처리 방침, 지역 사회를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한 이념적·경험적 지침이 풍부하게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목민서(牧民書)’이다. 목민서는 조선 현실과 국가 정책의 변화, 편·저자의 지방 통치 구상에 따라 그 내용과 체제가 변화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조선 초기에 중국의 목민서를 수입, 간행하여 활용하는 단계를 지나, 조선의 현실을 반영한 목민서가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다.
목민서 (牧民書)
조선 왕조의 지방 통치 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지방에 부임한 수령이 지켜야 할 마음가짐과 업무 처리 방침, 지역 사회를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한 이념적·경험적 지침이 풍부하게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목민서(牧民書)’이다. 목민서는 조선 현실과 국가 정책의 변화, 편·저자의 지방 통치 구상에 따라 그 내용과 체제가 변화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조선 초기에 중국의 목민서를 수입, 간행하여 활용하는 단계를 지나, 조선의 현실을 반영한 목민서가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다.
『인어대방』은 왜학 당상역관 최기령이 일본어 학습을 위하여 1790년에 편찬한 교재이다. 10권 5책 목판본으로, 총 236장에 510종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일본어를 흘림체로 쓰고, 한 자 낮추어 한글과 한자를 섞어 해자(楷字)로 썼다. 사역원에서 사용되었다. 국내에는 규장각도서관 소장본이 유일하다. 일본에도 규장각본과는 다른 『인어대방』이 있어, 한국어 학습서로 쓰여 왔다. 규장각 소장본을 교토대학 국어국문학회와 태학사에서 1988년에 영인하여 간행하였다. 구개음화된 표기, ㅅ계 합용병서와 각자병서, 종성 ㄷ의 표기 등의 국어학적 특징이 나타난다.
인어대방 (隣語大方)
『인어대방』은 왜학 당상역관 최기령이 일본어 학습을 위하여 1790년에 편찬한 교재이다. 10권 5책 목판본으로, 총 236장에 510종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일본어를 흘림체로 쓰고, 한 자 낮추어 한글과 한자를 섞어 해자(楷字)로 썼다. 사역원에서 사용되었다. 국내에는 규장각도서관 소장본이 유일하다. 일본에도 규장각본과는 다른 『인어대방』이 있어, 한국어 학습서로 쓰여 왔다. 규장각 소장본을 교토대학 국어국문학회와 태학사에서 1988년에 영인하여 간행하였다. 구개음화된 표기, ㅅ계 합용병서와 각자병서, 종성 ㄷ의 표기 등의 국어학적 특징이 나타난다.
백제의 제9대(재위: 286년~298년) 왕.
책계왕 (責稽王)
백제의 제9대(재위: 286년~298년) 왕.
1425년 춘천부사가 원나라 위역림의 『세의득효방』을 복각하여 인출한 의서.
세의득효방 권10~11 (世醫得效方 卷十~十一)
1425년 춘천부사가 원나라 위역림의 『세의득효방』을 복각하여 인출한 의서.
면주전(綿紬廛)은 조선시대에 육주비전(六注比廛) 가운데 하나로, 국내산 명주(明紬)를 취급하던 시전이다. 중국 황실 및 조선 왕실에 면주를 조달하는 업무를 맡았을 뿐 아니라 각종 잡역에도 동원되었다. 각종 시역을 부담하는 대가로, 시전들은 금난전권(禁亂廛權)을 부여받아 관상도고(官商都賈)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신해통공(辛亥通共) 이후 사상도고(私商都賈)와 경쟁하게 되었다.
면주전 (綿紬廛)
면주전(綿紬廛)은 조선시대에 육주비전(六注比廛) 가운데 하나로, 국내산 명주(明紬)를 취급하던 시전이다. 중국 황실 및 조선 왕실에 면주를 조달하는 업무를 맡았을 뿐 아니라 각종 잡역에도 동원되었다. 각종 시역을 부담하는 대가로, 시전들은 금난전권(禁亂廛權)을 부여받아 관상도고(官商都賈)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신해통공(辛亥通共) 이후 사상도고(私商都賈)와 경쟁하게 되었다.
삼국시대 백제 제9대 책계왕의 왕비.
보과 (寶菓)
삼국시대 백제 제9대 책계왕의 왕비.
『한어입문』은 호세코 시게가스가 일본인의 한국어 학습을 위하여 1880년에 편찬한 한국어 학습서이다. 활자본이며 상·하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언에서 문법서가 없어 한국어 학습이 어려우므로 한국어 학습을 돕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한다고 하였다. 기존 학습서와 달리 음운과 문자에 대한 해설, 문법적 분석, 경어와 방언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한국어를 ‘문자→단어→문법→문장’ 순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었다. 한글에 대한 해설과 음운적인 분석은 전근대기의 학습서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근대 한국어 학습서의 효시로 평가된다.
한어입문 (韓語入門)
『한어입문』은 호세코 시게가스가 일본인의 한국어 학습을 위하여 1880년에 편찬한 한국어 학습서이다. 활자본이며 상·하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언에서 문법서가 없어 한국어 학습이 어려우므로 한국어 학습을 돕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한다고 하였다. 기존 학습서와 달리 음운과 문자에 대한 해설, 문법적 분석, 경어와 방언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한국어를 ‘문자→단어→문법→문장’ 순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었다. 한글에 대한 해설과 음운적인 분석은 전근대기의 학습서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근대 한국어 학습서의 효시로 평가된다.
부여 정동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정동리 와요지 뒷산 주장산 남쪽 사면에 분포하는데 괴임식 돌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축조 시기는 대략 웅진시대보다 늦은 사비천도 이후인 6세기 후반 정도로 보인다. 지표 아래에서 문양전(무늬벽돌) 조각 18개를 발견하였고 서쪽으로 50∼70㎝ 떨어진 곳에서 괴석 4개가 열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벽돌의 무늬는 무문전, 연화문전, 대방명문전, 중방명문전 등이다. 벽돌 조각은 무덤 내부 바닥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정동리 고분군 (扶餘 井洞里 古墳群)
부여 정동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정동리 와요지 뒷산 주장산 남쪽 사면에 분포하는데 괴임식 돌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축조 시기는 대략 웅진시대보다 늦은 사비천도 이후인 6세기 후반 정도로 보인다. 지표 아래에서 문양전(무늬벽돌) 조각 18개를 발견하였고 서쪽으로 50∼70㎝ 떨어진 곳에서 괴석 4개가 열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벽돌의 무늬는 무문전, 연화문전, 대방명문전, 중방명문전 등이다. 벽돌 조각은 무덤 내부 바닥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선당(禪堂)으로 중수된 사찰건물. 불교건물.
보은 법주사 궁현당 (報恩 法住寺 窮玄堂)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선당(禪堂)으로 중수된 사찰건물. 불교건물.
고려의 제23대 왕, 고종의 외손자로, 대방공에 봉해진 종실.
왕징 (王澂)
고려의 제23대 왕, 고종의 외손자로, 대방공에 봉해진 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