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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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에 있는 조선후기 화강암으로 축조된 장방형의 돈대. 성곽시설.
계룡돈대 (溪龍墩臺)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에 있는 조선후기 화강암으로 축조된 장방형의 돈대. 성곽시설.
마니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이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라는 뜻에서 머리산 또는 마리산으로도 불린다. 본래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이었는데, 강화도와 둑으로 연결되면서 한 섬이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하였다는 참성단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성역(聖域)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1953년 이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매년 채화(採火)하고 있다.
마니산 (摩尼山)
마니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이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라는 뜻에서 머리산 또는 마리산으로도 불린다. 본래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이었는데, 강화도와 둑으로 연결되면서 한 섬이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하였다는 참성단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성역(聖域)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1953년 이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매년 채화(採火)하고 있다.
강화 광성보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 후기 군사 진보이다. 조선 효종~숙종 연간에 강화도 해안을 따라 설치된 군사 진보 가운데 하나로 1658년(효종 9) 신설되었다. 별장의 지휘 아래 광성돈대 등 2~3개의 돈대를 관할하였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당시 최대 격전지로 미군의 상륙 부대와의 전투에서 지휘관인 중군 어재연과 조선군 수비대 대부분이 전사한 역사적 현장이다.
강화 광성보 (江華 廣城堡)
강화 광성보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 후기 군사 진보이다. 조선 효종~숙종 연간에 강화도 해안을 따라 설치된 군사 진보 가운데 하나로 1658년(효종 9) 신설되었다. 별장의 지휘 아래 광성돈대 등 2~3개의 돈대를 관할하였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당시 최대 격전지로 미군의 상륙 부대와의 전투에서 지휘관인 중군 어재연과 조선군 수비대 대부분이 전사한 역사적 현장이다.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수군진이다. 선조 연간에 경기도 강화에 설치되었고 1666년(현종 7) 통진으로 이전 설치되었다. 이 수군진은 바다를 통해 강화도와 도성으로 진입하는 외적을 통제하던 수군 기지 가운데 하나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미군 함대에 포격을 가하여 미군의 북상을 저지한 곳이다.
김포 덕포진 (金浦 德浦鎭)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수군진이다. 선조 연간에 경기도 강화에 설치되었고 1666년(현종 7) 통진으로 이전 설치되었다. 이 수군진은 바다를 통해 강화도와 도성으로 진입하는 외적을 통제하던 수군 기지 가운데 하나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미군 함대에 포격을 가하여 미군의 북상을 저지한 곳이다.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하동 고성산성 (河東 高城山城)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