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고성산성 ( )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
건축
유적
국가유산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고성산 정상의 석축 산성.
유적
건립 시기
고려시대
관련 국가
고려
관련 인물
동학농민운동
높이
2m
둘레
650m
면적
7,500㎡, 125,564㎡(11필지)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산13-1번지 외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시도기념물(1994년 7월 4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산13-1번지 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정의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고성산 정상의 석축 산성.
위치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의 북봉과 남봉을 남북으로 길게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이 들어선 곳은 고도는 낮지만 주위를 조망하기에 유리한 위치이다. 동쪽으로는 남으로 흐르는 덕천강 주변과 서쪽과 남쪽에 형성된 저지대를 관망할 수 있다.

발굴 경위 및 결과

하동 고성산성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 산성이다. 280m 내외의 길이로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동서의 폭은 12~40m로 좁다. 둘레는 약 650m, 면적은 7,500㎡로 소규모 산성이다. 성내에서 문지나 건물지, 집수 시설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성의 가장 높은 정상부 2곳에서 주변을 조망하고 포를 쏠 수 있는 돈대(墩臺) 시설이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북쪽의 체성은 편축, 동쪽과 서쪽은 협축으로 쌓았다. 수직 형태인 남쪽 성벽은 드러난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그 위에 할석을 쌓았다. 북쪽의 편축 구간은 40㎝ 내외의 면석으로 쌓았다. 석축의 뒤로 뒤채움토를 수평으로 함께 쌓아 내벽을 축조하였다. 동쪽과 서쪽의 협축 구간은 기단석을 가로로 길게 놓기도 하고, 암반을 ‘ㄴ’자 형태로 약간 판 다음 할석을 쌓아 올렸다.

하동 고성산성은 일반적인 산성의 규모보다는 작지만 남쪽과 북쪽의 봉우리에 돈대를 각각 설치하여 산성의 남쪽과 북쪽 경계를 조망하는 데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봉의 돈대는 등산로가 개설되어 상태가 좋지 못하지만 1.4m x 1.9m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다. 남봉의 돈대는 0.8m x 1.3m 정도의 석축이 3단 정도 남아 있다. 북봉과 남봉의 돈대 주변으로 기와편과 도기편이 출토되었다.

변천

하동 고성산성은 1894년(고종 31)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의 항일 전적지(戰跡地)로 알려진 곳이다. 당시 옥종면 대곡리와 북방리는 진주목 북평면에 속하였다. 진주 지역의 동학 농민군 5,000여 명은 고성산성에 의지해 일본군을 상대로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많은 희생자를 내고 패퇴하고 말았다.

형태와 특징

하동 고성산성은 자연 암반에 의지하여 일부 구간만 쌓아 올린 석축 산성이다. 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돈대를 연결한 ‘평면 장방평’ 석축 산성으로 유물도 돈대 주변에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의의 및 평가

하동 고성산성은 축성 규모와 축조 수법, 성 내에서 수습되는 유물의 연대를 고려하면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부에는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을 쌓게 된 배경은 추정하기 어렵지만 고려시대 지방 세력인 소씨가(蘇氏家)가 몽고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성산성이 몽고군의 진주 침공이나 삼별초 항쟁 과정에서 축조되었는지는 조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하여 확인해 볼 만한 사항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삼강문화재연구원, 『河東 高城山城-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 시굴조사 -』 (2013)
옥종면지편찬위원회, 『옥종면지』 (2000)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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