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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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전은 고려 전기, 동여진(東女眞)이 거주한 지역으로 12세기 초에 9성(城) 설치를 두고 고려와 여진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 지역이다. 오늘날 북한의 함경남도, 함경북도, 양강도를 아우르는 지역에 해당한다. 금대(金代)에는 갈라로(曷懶路)로 개편되었다.
갈라전 (曷懶甸)
갈라전은 고려 전기, 동여진(東女眞)이 거주한 지역으로 12세기 초에 9성(城) 설치를 두고 고려와 여진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 지역이다. 오늘날 북한의 함경남도, 함경북도, 양강도를 아우르는 지역에 해당한다. 금대(金代)에는 갈라로(曷懶路)로 개편되었다.
고려전기 장주방어사, 시어사 겸 동로병마사 등을 역임한 무신.
김단 (金旦)
고려전기 장주방어사, 시어사 겸 동로병마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전기에, 안변도호부판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여진 고지문의 습격에 원병이 도착한 것처럼 대응하여 적을 물리친 문신.
김숭정 (金崇鼎)
고려 전기에, 안변도호부판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여진 고지문의 습격에 원병이 도착한 것처럼 대응하여 적을 물리친 문신.
윤관은 고려전기 동지추밀원사, 지추밀원사,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11년(예종 6)에 사망했다. 문종·숙종 시기 고려는 여진 정벌을 도모하다가 오히려 크게 참패당했을 정도로 여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윤관은 패전 경험을 토대로 여진의 기병에 대항할 별무반을 창설하여 대비했고 예종 때 정벌을 개시하여 9성을 축조하고 남도지방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여진의 적극적인 강화 요청과 9성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반환을 결정하면서 윤관은 문신들의 시기와 모함 속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윤관 (尹瓘)
윤관은 고려전기 동지추밀원사, 지추밀원사,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11년(예종 6)에 사망했다. 문종·숙종 시기 고려는 여진 정벌을 도모하다가 오히려 크게 참패당했을 정도로 여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윤관은 패전 경험을 토대로 여진의 기병에 대항할 별무반을 창설하여 대비했고 예종 때 정벌을 개시하여 9성을 축조하고 남도지방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여진의 적극적인 강화 요청과 9성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반환을 결정하면서 윤관은 문신들의 시기와 모함 속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여진정벌은 고려의 동북면에 거주하던 동여진을 토벌한 전쟁이다. 여진족은 고려의 동북면에서 농경이나 어업에 종사하였는데, 1104년 여진족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완안부 세력이 남하하여 정주를 침범하였다. 임간과 윤관 등이 군사를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였다가 실패하고 화친을 맺고 돌아왔다. 이후 고려는 별무반을 편성하여 군사를 양성하였고, 1107년에 17만 대군을 동원하여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축조하였다.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북진정책의 결과로 북방 영토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완안부의 약탈과 반환 요청이 계속되자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여진정벌 (女眞征伐)
여진정벌은 고려의 동북면에 거주하던 동여진을 토벌한 전쟁이다. 여진족은 고려의 동북면에서 농경이나 어업에 종사하였는데, 1104년 여진족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완안부 세력이 남하하여 정주를 침범하였다. 임간과 윤관 등이 군사를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였다가 실패하고 화친을 맺고 돌아왔다. 이후 고려는 별무반을 편성하여 군사를 양성하였고, 1107년에 17만 대군을 동원하여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축조하였다.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북진정책의 결과로 북방 영토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완안부의 약탈과 반환 요청이 계속되자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