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류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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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평안도 정주에서 류성룡이 임진왜란 관련 시무에 관하여 올린 문서이다. 9장의 한지를 가로로 이은 두루마리 형태에 세로로 116줄의 초서(반초서)로 쓰여 있다. 1633년(인조 11)에 간행된 『서애집(西厓集)』의 「권5, 차(箚)」에 「진시무차 임진 십일월 재정주(陳時務箚 壬辰十一月 在定州)」라는 차자(箚子)가 실려 있다. 이 차자의 초고에 해당하는 고문서다. 임진왜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애집』에 최종 수록된 「진시무차」와는 상당 부분 동일하지만, 내용상에서 서로 첨삭된 부분이 있어 차이를 보인다.
류성룡 필 진시무차 초고 (柳成龍 筆 陳時務箚 草稿)
1592년 평안도 정주에서 류성룡이 임진왜란 관련 시무에 관하여 올린 문서이다. 9장의 한지를 가로로 이은 두루마리 형태에 세로로 116줄의 초서(반초서)로 쓰여 있다. 1633년(인조 11)에 간행된 『서애집(西厓集)』의 「권5, 차(箚)」에 「진시무차 임진 십일월 재정주(陳時務箚 壬辰十一月 在定州)」라는 차자(箚子)가 실려 있다. 이 차자의 초고에 해당하는 고문서다. 임진왜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애집』에 최종 수록된 「진시무차」와는 상당 부분 동일하지만, 내용상에서 서로 첨삭된 부분이 있어 차이를 보인다.
대공수미법은 조선 중기 공납제(貢納制)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이이(李珥)·류성룡(柳成龍) 등에 의해 제기된 조세 정책이다. 수많은 종류의 공물을 현물이 아닌 그 현물의 값에 해당하는 쌀로 납부한다는 뜻이다. 이이가 이미 몇몇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동제역(大同除役)’의 관행에 힌트를 얻어서 입법을 주장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류성룡의 제안으로 1년 가까이 실시되었다가 중단되었지만, 1608년 이원익이 성립을 주도한 경기선혜법으로 결실을 보았다.
대공수미법 (代貢收米法)
대공수미법은 조선 중기 공납제(貢納制)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이이(李珥)·류성룡(柳成龍) 등에 의해 제기된 조세 정책이다. 수많은 종류의 공물을 현물이 아닌 그 현물의 값에 해당하는 쌀로 납부한다는 뜻이다. 이이가 이미 몇몇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동제역(大同除役)’의 관행에 힌트를 얻어서 입법을 주장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류성룡의 제안으로 1년 가까이 실시되었다가 중단되었지만, 1608년 이원익이 성립을 주도한 경기선혜법으로 결실을 보았다.
『상례고증(喪禮考證)』은 1581년과 1602년에 김성일(金誠一)과 류성룡(柳成龍)이 각각 지은 책이다. 김성일은 부친 김진(金璡)이 상을 당하였을 때 예서를 두루 살펴보다가 『의례』와 『가례』를 따르되, 『예기』의 정문을 찾아내 그 근거를 일일이 밝혀 『상례고증』을 저술하였다. 류성룡은 모친상 중에 『예기』의 기록이 방대하면서도 복잡하여 가례를 바탕으로 간편화하여 『상례고증』을 저술하였다. 이른 시기에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실제 사용에 편리하도록 정리한 저서로서 그 가치가 크다.
상례고증 (喪禮考證)
『상례고증(喪禮考證)』은 1581년과 1602년에 김성일(金誠一)과 류성룡(柳成龍)이 각각 지은 책이다. 김성일은 부친 김진(金璡)이 상을 당하였을 때 예서를 두루 살펴보다가 『의례』와 『가례』를 따르되, 『예기』의 정문을 찾아내 그 근거를 일일이 밝혀 『상례고증』을 저술하였다. 류성룡은 모친상 중에 『예기』의 기록이 방대하면서도 복잡하여 가례를 바탕으로 간편화하여 『상례고증』을 저술하였다. 이른 시기에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실제 사용에 편리하도록 정리한 저서로서 그 가치가 크다.
안동 하회마을은 고려 말 풍산류씨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조성한 씨족 마을이다. 고려 말 전서공 류종혜가 입향 이후 임암 류중영과 두 아들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에 이르러 번성하게 되었다. 사면이 경사진 곳에 마을 길과 가옥의 자리를 조성했는데, 마을 입구에서 양진당, 충효당으로 통하는 중심 안길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마을은 중심 안길을 경계로 북촌 지역과 남촌 지역으로 나뉜다. 이 마을은 주생활 공간, 의식 공간, 생산 활동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민속 신앙 관련 시설이 잘 보존, 전승되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安東 河回마을)
안동 하회마을은 고려 말 풍산류씨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조성한 씨족 마을이다. 고려 말 전서공 류종혜가 입향 이후 임암 류중영과 두 아들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에 이르러 번성하게 되었다. 사면이 경사진 곳에 마을 길과 가옥의 자리를 조성했는데, 마을 입구에서 양진당, 충효당으로 통하는 중심 안길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마을은 중심 안길을 경계로 북촌 지역과 남촌 지역으로 나뉜다. 이 마을은 주생활 공간, 의식 공간, 생산 활동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민속 신앙 관련 시설이 잘 보존, 전승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유성룡 관련 주택.
안동 하회 충효당 (安東 河回 忠孝堂)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유성룡 관련 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