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례고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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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1581년과 1602년에 김성일(金誠一)과 류성룡(柳成龍)이 각각 지은 책으로,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실제 사용에 편리하도록 정리한 저서.
문헌/고서
편찬 시기
김성일의 『상례고증』 1581년(선조 14), 류성룡의 『상례고증』 1602년(선조 35)
저자
김성일, 류성룡
권책수
김성일 1책, 류성룡 3권1책
권수제
喪禮考證
판본
필사본
표제
喪禮考證
소장처
김성일의 『상례고증』: 학봉기념관ㅣ류성룡의 『상례고증』: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상례고증(喪禮考證)』은 1581년과 1602년에 김성일(金誠一)과 류성룡(柳成龍)이 각각 지은 책이다. 김성일은 부친 김진(金璡)이 상을 당하였을 때 예서를 두루 살펴보다가 『의례』와 『가례』를 따르되, 『예기』의 정문을 찾아내 그 근거를 일일이 밝혀 『상례고증』을 저술하였다. 류성룡은 모친상 중에 『예기』의 기록이 방대하면서도 복잡하여 가례를 바탕으로 간편화하여 『상례고증』을 저술하였다. 이른 시기에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실제 사용에 편리하도록 정리한 저서로서 그 가치가 크다.

정의
1581년과 1602년에 김성일(金誠一)과 류성룡(柳成龍)이 각각 지은 책으로,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실제 사용에 편리하도록 정리한 저서.
저자 및 편자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본관이 의성(義城,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이며, 자가 사순, 호가 학봉이다.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본관이 풍산(豊山,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이며, 자가 이견(而見), 호가 서애(西厓) · 운암(雲巖)이다. 모두 퇴계(退溪) 이황(李滉) 문하에서 학문하였다.

서지사항

김성일의 『상례고증』은 그림이 있으며, 13행 23자이고 주쌍행이며, 책의 크기는 30×21.2㎝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상례고증(喪禮考證)』은 2종이 있다. 김성일과 류성룡이 각각 지었다.

김성일이 지은 『상례고증』은 그가 43세 되던 1580년 윤4월에 부친 김진(金璡)의 상을 당하자 예법에 관한 책을 두루 살펴 저술하였다. 절차는 『의례』『가례』를 따르되, 『예기』의 정문을 찾아내 그 근거를 일일이 밝혀 놓았으며, 이듬해인 1581년에 편찬하였다. 또 『의례』 외에 『두씨통전(杜氏通典)』 · 『구씨의절(丘氏儀節)』 · 『향교예집(鄕校禮輯)』 등을 참고하여 『가례』에 기술된 상례(喪禮)의 근거에 대한 미비점을 보충하였다.

류성룡의 『상례고증』은 모친상을 치르던 중에 저술하였다. 형인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이 1601년 3월에, 모친이 같은 해 8월 21일에 세상을 떠나자 상례를 탐구하여, 이듬해 2월에 『신종록(愼終錄)』, 4월에 『영모록(永慕錄)』을 저술하고 겨울에 『상례고증』을 지었다. 상중에 『예기』를 읽다가 그 기록이 방대하면서도 복잡하여 상례 시행에 참고하기 어려웠으므로, 『가례』의 각 조목을 강령으로 삼고 각각의 절목을 종류별로 붙여 상 · 중 · 하 3권으로 만들었다. 또한 양복(楊復)의 「의례상복도식」을 참고하여 각 조목 밑에 덧붙여서 점검하기에 편리하도록 했다.

구성과 내용

김성일의 『상례고증』은 1581년(선조 14)에 지었으나, 상례 절차 전반을 담고 있지는 않다. 수록된 항목은 초종(初終) · 위위(爲位) · 복(復) · 부(訃) · 목욕(沐浴) · 습(襲) · 반함(飯含) · 영좌(靈座) · 혼백(魂帛) · 명정(銘旌) · 소렴(小斂) · 대렴(大斂) · 분상(奔喪) · 빈(殯) · 조(弔) · 전(奠) · 부(賻) · 상장지구(喪葬之具) · 장(葬) · 조조(朝祖) · 견(遣) · 우(虞) · 부(祔) · 연(練) · 졸곡(卒哭) · 거상잡의(居喪雜儀) · 복제(服制) 등이다. 대상(大祥)담제(禫祭) 절차가 누락된 것은 여묘살이를 하느라 반곡(反哭) 이후의 절차를 행하지 못했고 미처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상과 부묘제 · 담제를 지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각 항목은 『가례』를 기본으로 하면서 그 항목에 해당하는 내용은 『예기집설대전』의 경문 가운데 상례에 해당하는 부분을 뽑고, 한 단 아래에 원나라 진호(陳澔)의 주를 달아 놓는 방식으로 기술하였다. 진호가 찬술한 『예기집설』은 상례가 권8의 상대기(喪大記) 이하이다.

류성룡의 『상례고증』은 김성일보다 20여 년 뒤인 1602년(선조 35)에 편찬되었다. 수록된 항목은 초종 · 복 · 입상주(立喪主) · 호상(護喪) · 역복불식(易服不食) · 부의례도식(附儀禮圖式) · 치관(治棺) · 고부(告訃) · 목욕 · 습 · 반함 · 전 · 위위 · 혼백 · 명정 · 소렴 · 대렴 · 빈 · 상차(喪次) · 성복(成服) · 부의례습질대방통도(附儀禮襲絰帶旁通圖) · 병유상(竝有喪) · 조석전(朝夕奠) · 삭망(朔望) · 천신(薦新) · 조(吊) · 부의례조복조(附儀禮吊服圖) · 복장(卜葬) · 장구(葬具) · 조조 · 조전(祖奠) · 견 · 발인 · 송장(送葬) · 위위 · 증현훈(贈玄纁) · 봉묘(封墓) · 합장 · 반곡 · 우(虞) · 졸곡 · 부의례수복남자도식(祔儀禮受服男子圖式) · 부 · 연 · 상 · 담 · 변례 · 문상 · 분상 · 총론 · 권제(權制) 등이다. 이 항목은 『가례』와 거의 유사하게 상례 절차를 수록하였다. 『가례』의 각 조목을 강(綱)으로 삼아 서술한 뒤, 한 단 낮추어 고증(考證)이라 쓰고 관련되는 『예기』의 상례에 해당하는 내용을 나열하는 형식이다.

의의 및 평가

김성일의 예학의 특징은 그 시대의 풍속과 국가 제도를 예법에 관련된 책들과 절충하려는 학문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퇴계 이황이 지향하는 예학의 특징이기도 한데, 김성일은 삼례(三禮) 중에 『예기』를 연구하여 상례의 절차들을 고증해 나갔다. 이러한 고증 방식은 류성룡의 『상례고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정구(鄭逑)가 1615년(광해군 7)에 『예기상례분류(禮記喪禮分類)』를 저술하며 이러한 경향을 이어 갔다. 그러나 정구의 책은 현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원전

『喪禮考證』

단행본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韓國禮學叢書』 1 (민족문화, 2008)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韓國禮學叢書補遺』 1 (민족문화, 2011)
김휴·오종필 역, 「喪禮考證」, 『國譯 海東文獻總錄』 (2013)

논문

이현진,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예학(禮學)과 『상례고증(喪禮考證)』」(『역사문화논총』 4, 역사문화연구소, 2008)
유영옥, 「鶴峯 金誠一의 父親喪 行禮 儀節」(『동양한문학연구』 21, 동양한문학회, 2005)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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