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명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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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활산성은 경주시 천군동의 흰등산과 서쪽의 장군봉, 내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의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약 4.7㎞의 대형 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13m로 추정된다. 5세기 이전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석성으로 개축되어 7세기까지 운영되었다. 명활산성은 사료와 금석문을 통하여 풍부한 역사적인 기록을 전하는 산성이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축으로 개축된 산성으로 7세기 후반 이후에 폐성되었다는 점에서 6~7세기의 신라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성이다.
명활산성 (明活山城)
명활산성은 경주시 천군동의 흰등산과 서쪽의 장군봉, 내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의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약 4.7㎞의 대형 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13m로 추정된다. 5세기 이전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석성으로 개축되어 7세기까지 운영되었다. 명활산성은 사료와 금석문을 통하여 풍부한 역사적인 기록을 전하는 산성이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축으로 개축된 산성으로 7세기 후반 이후에 폐성되었다는 점에서 6~7세기의 신라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성이다.
명활산성 작성비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신라의 명활산성 축성 후 건립한 비이다. 작성비는 축성에 대한 책임을 명백히 하고 축성 참가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55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에서는 591년에 세워진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 이후 처음 발견되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가 66.8㎝, 최대 너비 31.0㎝, 두께 16.5㎝이며 직사각형이다. 비문에는 작성 간지, 공사 총책임자의 이름, 실무자의 인명, 공사 기간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 비는 신라 중고기의 역사상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으로 평가된다.
명활산성 작성비 (明活山城 作城碑)
명활산성 작성비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신라의 명활산성 축성 후 건립한 비이다. 작성비는 축성에 대한 책임을 명백히 하고 축성 참가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55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에서는 591년에 세워진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 이후 처음 발견되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가 66.8㎝, 최대 너비 31.0㎝, 두께 16.5㎝이며 직사각형이다. 비문에는 작성 간지, 공사 총책임자의 이름, 실무자의 인명, 공사 기간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 비는 신라 중고기의 역사상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으로 평가된다.
관문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과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일대에 위치한 장성과 동쪽에 퇴뫼식으로 쌓은 석축 산성인 신대리산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산성 북쪽으로 봉수대까지 확인되는 복합 관방 시설이다. 관문성은 신라 722년(성덕왕 21)에 축조한 모벌군성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장성 구간은 높이 3m의 석축 면석으로 확인되는데, 이보다 앞서 축조된 남산신성이나 명활산성과 축조 방식의 비교 자료가 되어 남북국시대 신라의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관문성 (關門城)
관문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과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일대에 위치한 장성과 동쪽에 퇴뫼식으로 쌓은 석축 산성인 신대리산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산성 북쪽으로 봉수대까지 확인되는 복합 관방 시설이다. 관문성은 신라 722년(성덕왕 21)에 축조한 모벌군성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장성 구간은 높이 3m의 석축 면석으로 확인되는데, 이보다 앞서 축조된 남산신성이나 명활산성과 축조 방식의 비교 자료가 되어 남북국시대 신라의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