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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은(三隱)은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혹은 도은(陶隱) 이숭인) 등 은(隱)으로 끝나는 호를 가진 고려시대 후기의 세 학자를 일컫는다. 그 연원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구전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기록은 20세기 초에 제작된 「삼은각비문(三隱閣碑文)」이다. 그런데 1954년에 이병도의 『국사대관』에서 여러 사료를 소개하며 길재 대신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포함시켰다. 일제강점기 때의 학자, 문일평도 이병도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학계에서는 두 가지 설이 모두 통용되고 있다.
삼은 (三隱)
삼은(三隱)은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혹은 도은(陶隱) 이숭인) 등 은(隱)으로 끝나는 호를 가진 고려시대 후기의 세 학자를 일컫는다. 그 연원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구전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기록은 20세기 초에 제작된 「삼은각비문(三隱閣碑文)」이다. 그런데 1954년에 이병도의 『국사대관』에서 여러 사료를 소개하며 길재 대신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포함시켰다. 일제강점기 때의 학자, 문일평도 이병도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학계에서는 두 가지 설이 모두 통용되고 있다.
쌍계사(雙溪寺)는 고려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영조 대에 건립된 쌍계사 중건비(雙溪寺重建碑銘)가 현전한다. 중건비에 의하면 쌍계사는 고려 후기 행촌(杏村) 이암이 발원하여 중창하고 목은 이색이 연기문(緣起文)을 지었으며 조선 영조 대에 화재가 있어 중창이 이루어졌다.
작봉산 쌍계사 (鵲峰山 雙溪寺)
쌍계사(雙溪寺)는 고려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영조 대에 건립된 쌍계사 중건비(雙溪寺重建碑銘)가 현전한다. 중건비에 의하면 쌍계사는 고려 후기 행촌(杏村) 이암이 발원하여 중창하고 목은 이색이 연기문(緣起文)을 지었으며 조선 영조 대에 화재가 있어 중창이 이루어졌다.
이색은 고려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1352년(공민 1) 전제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고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초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끝내 고사했다.
이색 (李穡)
이색은 고려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1352년(공민 1) 전제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고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초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끝내 고사했다.
이색 선생 묘 일원은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에 있는 고려시대 문신·학자 이색의 무덤이다. 여주에서 사망한 뒤 셋째 아들이 이곳으로 모셔와 장사지냈다. 봉분과 묘역 구조와 석물 등이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후기 대학자 이색의 생애를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색 선생 묘 일원 (李穡 先生 墓 一圓)
이색 선생 묘 일원은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에 있는 고려시대 문신·학자 이색의 무덤이다. 여주에서 사망한 뒤 셋째 아들이 이곳으로 모셔와 장사지냈다. 봉분과 묘역 구조와 석물 등이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후기 대학자 이색의 생애를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