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문선"
검색결과 총 6건
이조는 고려시대·조선시대 문선(文選)·훈봉(勳封)·고과(考課)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동전(東銓)·천관(天官)이라고도 한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 공양왕 때 전리사를 이조로 개칭하였다. 세종이 즉위해 서열을 조정하여 법제상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고려시대에는 속사(屬司)로 고공사(考功司)만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는 문선사(文選司)·고훈사(考勳司)를 설치하였다. 『경국대전』에 등재된 이조의 속아문은 종부시·상서원·내시부·충훈부·사옹원·내수사·충익부이다. 돌발사나 중대사의 경우 판서·참판·참의가 속사를 지휘하면서 처리했다.
이조 (吏曹)
이조는 고려시대·조선시대 문선(文選)·훈봉(勳封)·고과(考課)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동전(東銓)·천관(天官)이라고도 한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 공양왕 때 전리사를 이조로 개칭하였다. 세종이 즉위해 서열을 조정하여 법제상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고려시대에는 속사(屬司)로 고공사(考功司)만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는 문선사(文選司)·고훈사(考勳司)를 설치하였다. 『경국대전』에 등재된 이조의 속아문은 종부시·상서원·내시부·충훈부·사옹원·내수사·충익부이다. 돌발사나 중대사의 경우 판서·참판·참의가 속사를 지휘하면서 처리했다.
조선후기 『도애시집』, 『도애시문선』, 『동국세시기』 등을 저술한 문인. 학자.
홍석모 (洪錫謨)
조선후기 『도애시집』, 『도애시문선』, 『동국세시기』 등을 저술한 문인. 학자.
천재지변으로 문묘에 경동(驚動)한 일 발생할 때 문선왕위(文宣王位)에게 올리는 제례.
위안제 (尉安祭)
천재지변으로 문묘에 경동(驚動)한 일 발생할 때 문선왕위(文宣王位)에게 올리는 제례.
고려시대 제례의식에서 사용된 아악곡(雅樂曲).
무안지곡 (武安之曲)
고려시대 제례의식에서 사용된 아악곡(雅樂曲).
「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성안지곡 (成安之曲)
「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명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 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전폐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명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에 「명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명안지곡 (明安之曲)
「명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 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전폐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명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에 「명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