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승지, 이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부수찬으로 기용되고, 이듬해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1509년(중종 4) 교리를 거쳐 부응교가 되고, 이듬해 전적을 거쳐 집의 겸 춘추관편수관이 되었다. 그 뒤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사성 겸 지제교·장악원정·우승지·첨지·장악원판결사를 역임하고, 1513년에 도승지가 되었다.
1514년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517년 공조와 형조의 참의가 되었다. 그 해에 중궁책봉주청사(中宮冊封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9년 전주부윤을 거쳐, 부제학으로 있을 때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 일파로 몰려 한때 좌천되었다가 곧 공조참판이 되고, 이어서 이조판서가 되었다.
1534년 참찬으로 승직되었으나, 나세찬(羅世纘)을 구하려다가 경기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뒤에 다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저서로는 『눌헌집(訥軒集)』이 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명신전(海東名臣傳)』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