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경(重卿), 호는 눌헌(訥軒). 이희(李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계반(李繼潘)이다. 아버지는 판관 이식(李埴)이며, 어머니는 부사 김숙(金潚)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로 등용되었다. 1500년 홍문관정자 겸 경연전경(弘文館正字兼經筵典經)이 되고, 1503년 저작·부사과를 거쳐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었다. 이듬해에 부수찬으로 폐비 윤씨(尹氏)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보은으로 유배되었고, 곧 곤양(昆陽)으로 옮겨졌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부수찬으로 기용되고, 이듬해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1509년(중종 4) 교리를 거쳐 부응교가 되고, 이듬해 전적을 거쳐 집의 겸 춘추관편수관이 되었다. 그 뒤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사성 겸 지제교·장악원정·우승지·첨지·장악원판결사를 역임하고, 1513년에 도승지가 되었다.
1514년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517년 공조와 형조의 참의가 되었다. 그 해에 중궁책봉주청사(中宮冊封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9년 전주부윤을 거쳐, 부제학으로 있을 때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 일파로 몰려 한때 좌천되었다가 곧 공조참판이 되고, 이어서 이조판서가 되었다.
1534년 참찬으로 승직되었으나, 나세찬(羅世纘)을 구하려다가 경기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뒤에 다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저서로는 『눌헌집(訥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