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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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의 계승과 재미동포사회의 권익신장을 위해서 설립된 사회운동단체.
LA 민족학교 (LA 民族學敎)
민족정신의 계승과 재미동포사회의 권익신장을 위해서 설립된 사회운동단체.
한신교육사건은 1948년 전후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전개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운동이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위한 국어강습소는 1946년 전국에 500여 개,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1947년 GHQ(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재일조선인도 일본의 교육법에 따르도록 지시했고, 이를 어기는 학교는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야마구치현 지사가 1948년 3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한다고 통고를 하자 수많은 조선인이 현청 앞에서 투쟁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은 4월 24일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킨 ‘교육투쟁 기념일’로 정했다.
한신교육사건 (阪神敎育事件)
한신교육사건은 1948년 전후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전개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운동이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위한 국어강습소는 1946년 전국에 500여 개,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1947년 GHQ(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재일조선인도 일본의 교육법에 따르도록 지시했고, 이를 어기는 학교는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야마구치현 지사가 1948년 3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한다고 통고를 하자 수많은 조선인이 현청 앞에서 투쟁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은 4월 24일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킨 ‘교육투쟁 기념일’로 정했다.
1946년에, 재일동포 조진남·장두식 등이 조선 문제와 동포 사회에 관해 일본어로 발행한 종합 잡지.
민주조선 (民主朝鮮)
1946년에, 재일동포 조진남·장두식 등이 조선 문제와 동포 사회에 관해 일본어로 발행한 종합 잡지.
윤한봉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전남북 책임자로 활동하고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함께 내려진 수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민주화운동가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윤한봉 (尹漢琫)
윤한봉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전남북 책임자로 활동하고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함께 내려진 수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민주화운동가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