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사오입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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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한 한국의 정당.
자유당 (自由黨)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한 한국의 정당.
이익흥은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5·16특사로 석방된 경찰·군인·정치인이다. 1905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이다. 일본 큐슈제국대학교, 도쿄대학교 대학원 등을 다녔다. 일제 하에서 경찰서장을 지내다가 해방 후 경기도 경찰청장, 서울시 경찰국장,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평화통일정책자문회 상임위원 등으로 위촉되어 1990년대까지 활동하였다. 방위포장, 충무무공훈장, 청조소성훈장, 동엽 자유훈장 등을 받았다.
이익흥 (李益興)
이익흥은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5·16특사로 석방된 경찰·군인·정치인이다. 1905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이다. 일본 큐슈제국대학교, 도쿄대학교 대학원 등을 다녔다. 일제 하에서 경찰서장을 지내다가 해방 후 경기도 경찰청장, 서울시 경찰국장,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평화통일정책자문회 상임위원 등으로 위촉되어 1990년대까지 활동하였다. 방위포장, 충무무공훈장, 청조소성훈장, 동엽 자유훈장 등을 받았다.
제헌국회의원, 제3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수선 (金壽善)
제헌국회의원, 제3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익노는 국회의원, 국회징계자격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활동에 일조한 정치인이다. 1905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수학한 후 경북 달성군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50년, 1954년,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54년 9월 이승만의 3선 개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부정행위로 인해 기소된 후, 이듬해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김익노 (金益魯)
김익노는 국회의원, 국회징계자격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활동에 일조한 정치인이다. 1905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수학한 후 경북 달성군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50년, 1954년,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54년 9월 이승만의 3선 개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부정행위로 인해 기소된 후, 이듬해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호헌동지회는 1954년 11월 29일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해 위헌적으로 개헌안 통과를 결정하자 야당계 의원 61명이 자유당에 대항하는 신당 결성을 목표로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발족 직후 신당촉진위원회를 구성해 원내외 야당계 인사들을 총망라한 신당 결성 작업을 추진하였으나 조봉암의 참여를 둘러싸고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로 분열되어 자유민주파만이 1955년 9월 19일 민주당을 결성하였다.
호헌동지회 (護憲同志會)
호헌동지회는 1954년 11월 29일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해 위헌적으로 개헌안 통과를 결정하자 야당계 의원 61명이 자유당에 대항하는 신당 결성을 목표로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발족 직후 신당촉진위원회를 구성해 원내외 야당계 인사들을 총망라한 신당 결성 작업을 추진하였으나 조봉암의 참여를 둘러싸고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로 분열되어 자유민주파만이 1955년 9월 19일 민주당을 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