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11월 29일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해 이미 주1된 개헌안을 표결을 통해 가결된 것으로 번복시키자 이에 항의하는 야당계 의원들 61명은 주2에서 퇴장하여 민의원 위원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11월 30일 새로운 교섭단체로 호헌동지회를 조직하고 윤병호를 대표 간사로 선임하였다. 호헌동지회는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국민당[이하 민국당]과 조선민주당의 흥사단 계열, 재야 야당계 인사 등 모든 야당세력을 망라한 광범위한 신당세력을 규합하여 원내외에 걸친 대규모 신당을 결성하기로 하였다.
신당운동 추진을 위해 호헌동지회는 신당촉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신당촉진위원회는 12월 24일 비민주세력 일제 배격, 책임정치 구현, 사회정의에 입각한 수탈 없는 경제체제 확립, 평화원칙에 입각한 외교정책 추진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신당발기취지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원내외 75명씩 150명으로 신당발기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원내외 인사들을 상대로 서명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장면과 민국당의 조병옥, 김준연 등이 조봉암 가입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신당추진 세력은 조봉암 가입에 반대하는 자유민주파와 조봉암 포섭을 주장하는 민주대동파로 분열하였다.
결국 신당운동은 1955년 4월 이후 자유민주파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민주대동파 의원들은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새로운 원내교섭단체를 추진하기로 하고 6월과 7월에 걸쳐 18명이 호헌동지회에서 탈퇴하였다. 호헌동지회 의원은 43명으로 줄어들었고, 이들 가운데 33명이 신당발기준비위원회에 가입하였다. 8월 8일 자유민주파가 주도하는 신당발기준비위원회는 당명을 민주당으로 정하고 최고집행기구는 최고위원제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9월 19일 정식으로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호헌동지회는 10월 4일 민주당 소속 의원 33명이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하고, 그에 앞서 9월 28일 민주대동파 의원들이 자유당 이탈파 및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31명으로 주3를 결성해 국회에 등록함으로써 자동 해체되었다. 그러나 무소속구락부는 곧 장택상 등의 가입 문제로 분열되었고, 일부 의원들이 이탈한 끝에 12월 26일 헌정동지회라는 새로운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하였다. 회원은 27명이었고 대표 간사는 변진갑이었다.
호헌동지회는 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한 야당 의원들이 통합 야당 결성을 목표로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거치며 분열 · 약화되었던 야당 세력은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통합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조봉암의 참여를 둘러싸고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로 분열하였고, 결국 보수적인 자유민주파가 중심이 되어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호헌동지회는 이승만 정권 및 자유당에 대항하는 단일 보수 야당의 산파 역할을 하였지만, 원래 목표인 야당 세력의 총단합에는 실패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야당 진영 내부의 이념적 분열은 1956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추진된 야당 후보 단일화 작업의 실패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