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자결단 ()

현대사
단체
1952년, 부산정치파동 당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 통과와 국회 해산을 주장한 친이승만 계열의 단체.
단체
설립 시기
1952년
설립자
백성욱, 윤재관 등
설립지
부산
소재지
부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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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민중자결단은 1952년 부산정치파동 당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 통과와 국회 해산을 주장한 친이승만 계열의 단체이다. 1952년 5월 24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민중자결선포대회를 개최하는 등 각종 시위와 폭력 행동에 앞장섰다. 1952년 제2대 정부통령선거에서는 이승만의 재출마운동을 벌였고, 1954년 제3대 총선을 앞두고 이승만이 추진하는 개헌운동에도 동원되었다.

정의
1952년, 부산정치파동 당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 통과와 국회 해산을 주장한 친이승만 계열의 단체.
설립 목적

민중자결단은 1952년 초대 대통령 임기 종료를 앞두고 이승만이 추진하는 주1 개헌을 위해 설립되었다. 제4대 내무부장관을 지낸 백성욱(白性郁)이 관여했다고 알려졌으며 단장은 윤재관(尹載官)이었다. 주2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고 본부는 강일매(姜一邁)가 관리인으로 있던 조선방직에 있었다. 땃벌떼는 민중자결단이 거느린 행동대였다.

주요 활동

부산정치파동에서 민중자결단의 활동은 관제 시위와 민의 조작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반대하고 주3 개헌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을 압박하는데 집중되었다. 이들은 1952년 5월 24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민중자결선포대회를 개최하였고, 6월 9일에는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민중자결선포전국대표자대회를 열었다. 이들의 활동은 매우 조직적이고 폭력적이었는데 5월 24일 시위에서는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죽창을 들었다. 6월 28일에도 임시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채 직선제 개헌안 통과와 국회 해산을 주장하며 의원들의 출입을 막아 의원 7~80명이 연금당하고 일부 의원들은 부상을 입었다. 6월 30일에는 전국민중자결시군대표자회의 명의로 국회 해산 및 즉각적인 총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이승만에게 제출하였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된 후에도 민중자결단의 관제 민의 동원 활동은 계속되었다. 이들은 제2대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의 대통령선거 출마를 권고하는 340만여 장의 연판장을 가지고 임시경무대 앞에서 농성투쟁을 벌였다. 부통령 후보로는 백성욱을 지지하였다. 제2대 국회 말에는 개헌운동에 앞장섰다. 민중자결단은 1953년 6월 9일 대국회 건의안을 발표해 이승만이 주장하는 국회의원 주4와 대통령에게 주5을 부여하는 개헌을 요구하였고, 1954년 3월 들어 일부 정치세력과 제휴해 초대 대통령의 종신 집정을 포함한 개헌 공작을 전개하였다. 4월 19일에는 자유당 등과 함께 개헌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때 검토한 개헌 조항은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 제한 철폐, 국민투표제와 국회의원 소환제, 정부에 국회해산권 부여, 경제조항 개정 등이었는데, 제3대 총선 이후 일부 조정을 거쳐 11월 28일 자유당에 의해 통과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도 민중자결단은 1956년 제3대 정부통령선거에서 자유당의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등 자유당의 외곽조직으로 활용되었다.

의의 및 평가

민중자결단은 1952년 부산정치파동 때 대중동원을 통해 의회내 야당 세력을 압박함으로써 이승만 대통령이 추진하는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조직되었다. 민중자결단의 활동은 부산정치파동의 폭력적 측면과 함께 집권 초기 의회 내에서 안정적 기반을 갖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이 원외 대중단체들을 활용해 구사하는 ‘동원의 정치’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1954년 제3대 총선을 통해 자유당이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민중자결단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해서 민중자결단은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 유지를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비화 임시수도 천일』(부산일보사, 1982)

논문

이혜영, 「제1공화국기 자유당과 '이승만 이후' 정치 구상」(이화여자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5)

신문·잡지 기사

「대상 무려 백여 명 자유당의 기관장 포섭공작 노골화」(『동아일보』, 1957. 8. 28.)
「선거중반전 점묘(4): 충청남북도편 1」(『동아일보』, 1956. 4. 29.)
주석
주1

국민 전체가 투표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 우리나라에서는 제2 대·제3 대·제5 대·제6 대·제7 대 대통령을 이렇게 선출하였고, 1987년 채택된 제9 차 개정 헌법에 따라 제13 대 대선 때부터는 계속해서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말샘

주2

1951년에 창당된 보수 정당 중 하나. 당시 국회 외부의 세력인 이승만, 이범석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대립하던 원내 자유당 세력을 누르고 1952년에 발췌 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킴으로써 1960년까지 집권하였다. 우리말샘

주3

국회의 신임에 따라 정부가 성립·존속하는 정치 제도. 18세기 초에 영국에서 처음 성립되었으며, 다수당을 중심으로 행정부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민은 국회를 통하여 정부의 시책을 감시할 수 있다. 우리말샘

주4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 또는 주민의 발의로 공무원을 파면하는 제도. 우리말샘

주5

국가 비상사태에 대통령이 특별한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 국가 긴급권의 하나로,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적·경제적 위기에 처하였을 때 행한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혜영(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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