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청은 해방 후 소련군이 한반도의 38선 이북 지역을 점령한 후 민정 업무를 다루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레베제프가 책임을 맡았고 13개 부, 78명으로 구성되었다. 연해주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 쉬띄꼬프 상장의 지휘 아래 있었고, 각 도 및 시군에 설치된 소련군 경무사령부와 경비소대를 통제하며 소련군의 북한 점령 통치를 담당하였다.
1945년 8월 26일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 제25군 사령부는 38선 이북 지역의 사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각 도와 시군에 주1사령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10월 3일 주2 업무를 다루기 위해 제25군 사령부 산하에 50명의 장교단을 통솔하는 민정 담당 부사령관 직제을 마련하고 로마넨코[Андрей Алексеевич Романенко] 소장을 임명하였다. 이 민정기관은 행정 · 정치부, 산업부, 재정부, 교통부, 보안 · 검열부 등 10개의 부서로 구성되었고, 1945년 11월 19일 설립된 북조선 행정10국에 대한 지도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후 한반도의 정치상황 변화와 함께 북한의 행정 · 기구의 규모와 사업이 확대되자 소련군 사령부는 민정기관의 조직과 체계를 개편하여 1947년 5월 25일 소련민정청을 설치하였다. 민정청장에는 군사위원 니콜라이 레베제프[Николай Георгиевич Лебедев]를 임명하였다.
평양에 주재한 소련민정청은 정치담당 부관, 주민사업부, 출판지도부, 농업지도부, 산업지도부, 교통지도부, 상업조달지도부, 통신지도부, 보건지도부, 재정지도부, 사법검찰지도부, 교육문화지도부, 간부부, 경리부 등 13개 부로 구성되었다. 총 인원은 78명이었다. 소련민정청의 활동은 연해주 우스리스크에 위치한 연해주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 쉬띄꼬프의 직접적 지휘 아래 있었으며, 소련 국방성과 외무성을 경유하여 소련 내각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통제를 받았다. 소련민정청은 소련군 제25군 정치부와 연해주군관구 정치부 산하에 있던 보도국, 군사검열부, 라디오방송 편집부, 조선신문 편집부의 사업을 지도하였다. 또한 각도 경무사령관들의 정치활동을 지도하기 위해 파견된 6명의 각 도 고문, 총 971명으로 구성된 6개의 도 경무사령부와 85개의 군 경무사령부, 총 45명으로 구성된 3개의 시 경무사령부와 경비소대를 통제하며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북한 지역의 점령 통치를 수행하였다. 소련민정청의 통제 아래 활동하던 인원은 1,182명에 달하였다.
해방 후 38선 이북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의 점령 통치는 연해주군관구 군사회의 → 제25군사령부/소련민정청 → 경무사령부의 체계로 이루어졌다. 민정 업무 처리를 위해 조직된 소련민정청은 직접적인 대민 통치기구의 역할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행정주권기관으로서 사실상 정부 기능을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비롯해 각 정당의 조직 활동을 지도하고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실시하는 등 소련군의 점령 통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