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천_3_·1운동"
검색결과 총 5건
이규승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에서 일어난 사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독립 선포식을 거행하고 만세를 부르면서 주재소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행진하다 일제와 충돌하면서 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 소장 등을 처단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규승 (李奎昇)
이규승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에서 일어난 사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독립 선포식을 거행하고 만세를 부르면서 주재소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행진하다 일제와 충돌하면서 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 소장 등을 처단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준배는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일대에서 전개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원장리 시장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날 검거된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헌병주재소로 향하다가 매복해 있던 일제 헌병의 총격에 맞서 헌병을 피살하였다. 다음날 관련자 검거 때 체포되어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살인, 방화,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준배 (李俊培)
이준배는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일대에서 전개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원장리 시장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날 검거된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헌병주재소로 향하다가 매복해 있던 일제 헌병의 총격에 맞서 헌병을 피살하였다. 다음날 관련자 검거 때 체포되어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살인, 방화,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혜준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마을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마을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일 만세시위로 검거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3월 4일 사천시장에 모여 사천 헌병주재소로 향하다가 일제 헌병과 충돌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격렬한 시위 끝에 일제 군경에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7월 1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혜준 (李兮俊)
이혜준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마을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마을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일 만세시위로 검거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3월 4일 사천시장에 모여 사천 헌병주재소로 향하다가 일제 헌병과 충돌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격렬한 시위 끝에 일제 군경에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7월 1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윤상열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 3 · 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에서 일어난 사천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일본 헌병 상등병 등을 살해하는 데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윤상열 (尹相悅)
윤상열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 3 · 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에서 일어난 사천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일본 헌병 상등병 등을 살해하는 데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손계묵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사천공립보통학교 만세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의 고문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4월 14일 사천 중서포 도로공사 인부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고문으로 그해 5월 부산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손계묵 (孫桂默)
손계묵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사천공립보통학교 만세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의 고문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4월 14일 사천 중서포 도로공사 인부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고문으로 그해 5월 부산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