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흠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원(百源), 호는 삼명(三溟)이다. 1794년(정조18) 문과에 급제해 1833년(순조33)년 죽을 때까지 중간에 약 10년을 제외하고는 지속해서 관직을 역임했으며, 공서파에 적극 가담하여 남인 시파와 대립하였다. 시문에 조예가 깊어 당대 문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저술로는 『삼명집』과 『삼명시화』가 있다.
강준흠
(姜浚欽)
강준흠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원(百源), 호는 삼명(三溟)이다. 1794년(정조18) 문과에 급제해 1833년(순조33)년 죽을 때까지 중간에 약 10년을 제외하고는 지속해서 관직을 역임했으며, 공서파에 적극 가담하여 남인 시파와 대립하였다. 시문에 조예가 깊어 당대 문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저술로는 『삼명집』과 『삼명시화』가 있다.
역사
인물
조선 후기
- 출생1768년(정조 18)
- 사망1833년(순조 33)
- 자백원(百源)
- 호삼명(三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