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석축산성"
검색결과 총 9건
대전광역시 동구 갈고개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석성.
갈현성 (葛峴城)
대전광역시 동구 갈고개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석성.
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장바위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협축식으로 쌓은 정교한 체성벽과 높은 내벽, 보축 성벽, 현문식 성문 등 초기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65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15m에 달한다. 5세기 말경에 처음 축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다.
견훤산성 (甄萱山城)
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장바위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협축식으로 쌓은 정교한 체성벽과 높은 내벽, 보축 성벽, 현문식 성문 등 초기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65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15m에 달한다. 5세기 말경에 처음 축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고려후기 진성으로 초축된 성곽. 산성.
구례 석주관성 (求禮 石柱關城)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고려후기 진성으로 초축된 성곽. 산성.
미숭산성(美崇山城)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고려시대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고도가 높은 미숭산의 험준한 자연 지형에 따라 쌓은 성으로 그 둘레는 1,325m에 이른다. 합천은 역사·지리적으로 대가야에 속했던 지역이고 남쪽의 불무골은 대가야의 철산지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한동안 미숭산성은 가야의 성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숭산성 (美崇山城)
미숭산성(美崇山城)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고려시대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고도가 높은 미숭산의 험준한 자연 지형에 따라 쌓은 성으로 그 둘레는 1,325m에 이른다. 합천은 역사·지리적으로 대가야에 속했던 지역이고 남쪽의 불무골은 대가야의 철산지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한동안 미숭산성은 가야의 성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순천 검단산성은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석축산성이다. 정유재란 당시 조명 연합군이 이 산성에 머물면서 순천왜성의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여서 조선시대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3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검단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확인되었다. 둘레는 430m이며, 성내에서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가 확인되었다.
순천 검단산성 (順天 檢丹山城)
순천 검단산성은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석축산성이다. 정유재란 당시 조명 연합군이 이 산성에 머물면서 순천왜성의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여서 조선시대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3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검단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확인되었다. 둘레는 430m이며, 성내에서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가 확인되었다.
양주 대모산성(楊州 大母山城)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6세기 중반 이후 임진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축조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연천 대전리산성과 함께 나당전쟁의 중요 격전지였던 매소성과 비교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성벽과 관련 구조물, 집수지 등에서 여러 차례 산성을 개축한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출토된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까지 산성을 지속적으로 활용했음이 밝혀졌다. 다만 일부 확인되는 백제 유구와 유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양주 대모산성 (楊州 大母山城)
양주 대모산성(楊州 大母山城)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6세기 중반 이후 임진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축조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연천 대전리산성과 함께 나당전쟁의 중요 격전지였던 매소성과 비교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성벽과 관련 구조물, 집수지 등에서 여러 차례 산성을 개축한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출토된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까지 산성을 지속적으로 활용했음이 밝혀졌다. 다만 일부 확인되는 백제 유구와 유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추화산성(推火山城)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라의 석축 포곡식 산성이다. 동문과 남문, 북쪽 계곡에는 우물과 집수지, 부속 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내부에서 단각고배, 인화문토기, 승렴문호, 파상문 단경호, 순청자 접시, 상감청자 종지, 분청자 저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6세기 후반경)에 초축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산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화산성 (推火山城)
추화산성(推火山城)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라의 석축 포곡식 산성이다. 동문과 남문, 북쪽 계곡에는 우물과 집수지, 부속 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내부에서 단각고배, 인화문토기, 승렴문호, 파상문 단경호, 순청자 접시, 상감청자 종지, 분청자 저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6세기 후반경)에 초축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산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하동 고성산성 (河東 高城山城)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충주 남산성(忠州 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남쪽의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마고성, 충주산성, 금봉산성 등으로 불리는데, 발굴 조사 결과 7세기 말 신라의 북진 및 충주 지역 진출과 관련된 신라시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1,120m이며, 동서남북 방향에 현문식으로 조성된 4개의 문지를 비롯하여 수구, 저수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충주 남산성 (忠州 南山城)
충주 남산성(忠州 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남쪽의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마고성, 충주산성, 금봉산성 등으로 불리는데, 발굴 조사 결과 7세기 말 신라의 북진 및 충주 지역 진출과 관련된 신라시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1,120m이며, 동서남북 방향에 현문식으로 조성된 4개의 문지를 비롯하여 수구, 저수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