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성에 대한 시굴 조사는 1996년에 실시되었다. 그 결과 검단산성은 전형적인 백제 석축(石築) 산성으로 확인되었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상정부에서 복부까지 아우르는 산복식 산성이다. 성곽의 둘레는 430m, 성벽의 높이는 13m 정도 남아 있으며, 성벽의 두께는 500510cm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벽은 내벽과 외벽을 갖춘 협축식이며, 외벽과 내벽은 부정형의 깬돌을 사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내벽과 외벽 사이에는 생토층 위에 30-50cm 두께로 흙을 다지고 그 위에 잡석을 채워 넣었다. 성벽 몸체의 외벽에는 4-7단 높이까지 붉은 점토와 잡석으로 성벽의 몸체 부분을 보강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이어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3차에 걸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약 250m 길이의 성벽 몸체의 외벽 3개소의 문지, 5동의 지상 건물지, 수혈 건물지 4동, 저장공 3곳, 대형 우물 1개소, 팔각집수정, 1개소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에서 남, 서, 북 3개의 문지가 확인되었다. 남문지와 서문지는 능선 정상부에 위치하고, 남문지는 능선에서 계곡부로 약간 치우친 곳에 있다. 문지는 모두 개거식이다. 남문지는 문구부의 너비는 안쪽 440cm, 바깥쪽 380cm이며, 문지 바닥에는 성문을 설치하였던 기둥구멍이 확인되었다. 기둥구멍의 바닥에는 부소산성의 백제 건물지와 마찬가지로 판석이 1매 놓여 있었다. 서문지와 북문지의 형태도 거의 비슷하다.
검단산성 서쪽 가장 낮은 지점에서는 대형의 석축 우물이 조사되었다. 우물의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길이는 810cm, 너비 400cm, 깊이 350cm로 대형이다. 우물의 벽체도 성벽 몸체 부분의 성돌과 같은 부정형의 석재로 쌓아 올렸다. 벽석 뒷쪽에는 1m 이상의 두께로 점토를 다져 놓아 물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였으며, 우물지 내부에는 각재을 사용하여 목곽처럼 결구한 구조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물 내부에서는 다량의 기와를 비롯하여, 바가지형 목기, 물동이형 목기 등의 목제품과 철모, 철촉, 석환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팔각 집수정과 직사각형 저장공, 초석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산성의 정상부에서 12각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12각 건물지는 하남 이성산성과 공주 공산성에서도 발굴되었으나 모두 통일신라 건물지로 확인되었다.
백제성의 특징이 가공성돌로 쌓은 성벽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순천 검단산성을 비롯하여, 광양 마로산성, 임실 성미산성, 순창 합미산성 등 다수의 백제 산성에 대한 발굴 조사 성과가 축적되면서 백제 석축산성의 특징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었다. 백제 석축산성은 해발 고도가 높지 않은 산정부에서 산사면을 연결하여 쌓는 산복식 산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둘레는 400~600m 정도이다. 성벽의 몸체 부분은 가공하지 않은 할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하였으며, 협축식으로 쌓았다. 문구부는 개거식이며 문구부의 양측에서 기둥구멍이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성내에는 점토나 석축을 덧붙여 쌓은 원형집수지가 확인되며, 집수지의 석축은 성벽 몸체 부분의’ 성돌과 유사하다. 이러한 백제 축성법은 직사각형 성돌, 현문식 성문, 보축성벽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동 시기의 신라 축성법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이는 국가별 축성법의 원천이 되는 토목 기술의 유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검단산성은 6세기 중엽에 축성된 백제 석축산성으로 백제 축성법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산성이다. 순천 지역은 백제 삽평군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 삽평군의 치소성을 해룡산 토성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해룡산 토성은 통일신라시대의 기단식 판축(板築) 산성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순천 지역에서 확인된 산성 중 검단산성이 백제성으로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나 입지를 고려하더라도 검단산성이 백제 삽평군의 치소성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