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거열산성은 거창군 건흥산 해발 572m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거창 거열산성은 정상부를 둘러서 쌓은 내성과 덧붙여서 쌓은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6세기 중엽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으며, 외성은 673년(문무왕 13)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쌓은 '건흥사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성과 외성은 100여 년의 축성 시기 차이로 인하여 축성법의 변화 양상을 잘 관측할 수 있다. 1974년에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20년에 사적으로 승격되면서 성의 공식적인 명칭이 거열성에서 거창 거열산성으로 바뀌었다.
거창 거열산성은 1974년에 경상남도 기념물 22호로 지정되었다. 기념물 지정 당시 거창 거열산성의 규모와 구조,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 등에 대한 기초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거창 거열산성이 『삼국사기』의 기록에 등장하는 백제 부흥 운동의 거점성으로 663년에 신라 장군 김흠순과 김천존에 의해 함락되어 700명이 전사한 거열성과 673년(문무왕 13)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축성한 '거열 주의 만흥산 산성'으로 비정(比定)되었기 때문이다.
1977년에 거창 거열산성에 대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져 성벽의 형태가 확인되었으나, 당시에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구성된 거창 거열산성의 구조와 축성법의 차이가 인식되지 못하였다.
1997~2000년과 2003년에 지표 조사를 바탕으로 복원 공사가 실시되어 전체 성벽의 40%에 달하는 성벽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축성 시기를 달리하는 내성과 외성의 특성이 복원 성벽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며, 비교적 잘 보존되었던 외성의 성벽 잔존 구간이 모두 사라졌다.
2004~2005년에 아직 복원되지 않은 북쪽 성벽 구간과 성 내부 건물지에 대한 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협축식으로 쌓은 체성 벽과 현문식 성문, 외벽의 기단 보축이 확인되었다. 또한 조사 지역에서 다량의 통일 신라 시대 유물이 출토되면서 거창 거열산성이 문무왕대에 쌓은 '만흥산 산성'으로 추정되었다.
2008~2009년에 거열산성 서쪽 계곡부 체성과 집수 시설을 대상으로 하여 2차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서쪽 성벽 내에서 2기의 장방형 집수 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체성 벽 중간 부분에서 방형의 성벽 통과식 배수구가 확인되었다. 성내에서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중후반의 신라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조사단은 김흠순과 김천존이 함락한 성은 거창의 중심부에 있는 거창 분산성(盆山城)이며, '만흥사 산성'이 거창 거열산성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2015~2016년에 거창 거열산성의 전체 구조를 확인하기 위하여 남쪽의 복원 성벽을 제외한 전 구간에 대한 3차 시굴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처음으로 거창 거열산성은 내성과 외성의 축성 시기가 구분되는 이중성인 것이 밝혀졌다. 조사단은 내성이 6세기 중엽에 먼저 쌓은 것이고, 외성이 7세기 후반에 덧붙여 쌓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2019년에 외성 내의 방형 집수 시설을 대상으로 하여 4차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상단부 너비 7.2m, 하단부 너비 5.3m, 높이 2.7m로, 단면이 역사다리꼴인 장방형 집수 시설이 확인되었다. 조사단은 집수지 내에서 출토된 단판 타날 평기와를 통해 집수지 축조 시점을 7세기 후반으로 추정하였다. 이 조사는 외성이 673년(문무왕 13)에 쌓은 '만흥사 산성'으로서의 가능성이 있음을 발굴 조사를 통하여 입증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창 거열산성의 내성은 6세기 후반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다. 562년 대가야를 공략한 신라는 함양-거창-고령 루트를 확보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거창 거열산성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내성에서 확인되는 축성법은 협축식으로 쌓은 성벽과, 편암계의 세장방형 성돌, 현문식 성문, 단면 삼각형 보축 성벽, 성벽 통과식 방형 수구(水口) 등으로 6세기 중엽 신라 성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거창 거열산성의 외성은 내성이 축성된 이후 100여 년이 지난 673년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외성의 특징은 편축식 성벽, 성벽 기초에 사용되는 대형의 지대석, 화강암 가공 성돌, 퇴물림 쌓기 등으로 신라 통일기 축성법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체성 벽의 높이도 내성에 비하여 현저하게 낮아졌으며 편축식으로 구축되어 내벽은 확인되지 않는다. 거창 거열산성의 내성 성돌의 대부분이 인근의 기반암인 흑운모 편암이었던 것에 비해, 외성 성돌은 화강암으로 성곽에서 최소한 2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가져와 쌓은 것으로 보인다.
거창 거열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석축 성이다. 내성은 6세기 중엽, 외성은 7세기 후반에 축성되어 100여 년의 시차를 보인다. 거창 거열산성에서 확인되는 이러한 특징은 신라 석성 축성법의 변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거창 거열산성은 외성의 축성 시기가 673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신라 석축 산성 축성법과 관련된 표준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아울러 축성 기술은 토목 기술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거창 거열산성은 축성 당시의 수리, 측량, 기하학, 건축 등 토목 기술 전반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거창 거열산성은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산성을 발굴 조사를 통하여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