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성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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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는 가톨릭 교회 및 정교회의 사제서품(司祭敍品)을 받은 성직자이다. 사람들 가운데에 뽑혀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아서 거룩한 희생 제사를 바치며, 다른 사람과 함께 형제처럼 살아가기 위해 가톨릭(정교회 포함)에서 서품을 받은 성직자를 말한다.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영적·신체적·지적 자격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신학교 입학 후에는 기본 7년 이상의 학업을 마쳐야 하며, 신학교 측에서 합법적인 평가를 내리면 지역 주교의 최종 승인을 거친 다음 신부가 될 수 있다.
신부 (神父)
신부는 가톨릭 교회 및 정교회의 사제서품(司祭敍品)을 받은 성직자이다. 사람들 가운데에 뽑혀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아서 거룩한 희생 제사를 바치며, 다른 사람과 함께 형제처럼 살아가기 위해 가톨릭(정교회 포함)에서 서품을 받은 성직자를 말한다.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영적·신체적·지적 자격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신학교 입학 후에는 기본 7년 이상의 학업을 마쳐야 하며, 신학교 측에서 합법적인 평가를 내리면 지역 주교의 최종 승인을 거친 다음 신부가 될 수 있다.
신성우(申聖雨)는 해방 이후 경성천주공교신학교 경리 신부, 소사본당 주임 신부 등으로 활동한 천주교 성직자이다. 천주교 수원교구 성직자로, 세례명은 마르코이다. 1920년에 사제품을 받은 후,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등지의 본당에서 사목하였고, 경성천주공교신학교(京城天主公敎神學校)의 경리 신부, 성가소비녀회(聖家小卑女會)의 지도 신부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소명가정기술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교육 활동도 전개하였다.
신성우 (申聖雨)
신성우(申聖雨)는 해방 이후 경성천주공교신학교 경리 신부, 소사본당 주임 신부 등으로 활동한 천주교 성직자이다. 천주교 수원교구 성직자로, 세례명은 마르코이다. 1920년에 사제품을 받은 후,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등지의 본당에서 사목하였고, 경성천주공교신학교(京城天主公敎神學校)의 경리 신부, 성가소비녀회(聖家小卑女會)의 지도 신부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소명가정기술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교육 활동도 전개하였다.
조신철(趙信喆)은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의 성인(聖人)이다. 23세부터 동지사(冬至使)의 마부로 일하다가 30세경에 유진길을 통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베이징 교회와의 연락과 성직자 영입 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1834년에 여항덕(余恒德, 유 파치피코) 신부, 1836년 이후에는 프랑스 선교사들을 입국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조신철 (趙信喆)
조신철(趙信喆)은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의 성인(聖人)이다. 23세부터 동지사(冬至使)의 마부로 일하다가 30세경에 유진길을 통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베이징 교회와의 연락과 성직자 영입 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1834년에 여항덕(余恒德, 유 파치피코) 신부, 1836년 이후에는 프랑스 선교사들을 입국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주교회의 공동의장 등에 서임된 사제. 추기경.
김수환 (金壽煥)
해방 이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주교회의 공동의장 등에 서임된 사제. 추기경.